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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Feb 17. 2021

계속되는 인연

성 안의 숙소를 여러 곳 둘러보았다. 저렴하지만 옥상이 멋진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했다. 여행 가이드 북에 소개된 곳이었다. 이름은 데저트 보이스 게스트하우스. 방에 짐만 내려놓은 뒤 옥상으로 올라갔다. 전망 좋은 벤치와 그네도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옥상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드는 숙소였다. 아점을 간단히 때웠더니 출출했는데 마침 게스트하우스에 음식을 팔고 있었다.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가장 실패할 것 같지 않은 메뉴, 누텔라 크레페를 먹어보기로 했다. 누텔라가 들어갔는데 맛없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살짝 익힌 밀가루 반죽에 초코를 약간 찍어 먹는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저녁은 꼭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다 성 위의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록 하늘은 회색빛이었지만 금빛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족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호수까지 다시 천천히 걷기로 했다. 평소 여행할 때 이 골목 저 골목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구경하는 편인데, 나빈 가족과 함께 걸을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이살메르 마을 풍경은 델리와는 무척 달랐다. 소소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물론 인도의 도시들 중에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표정도 한층 밝았다. 카메라를 든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나를 향해 밝게 미소를 짓곤 했다. 여기저기 맘에 드는 공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놀멍 쉬멍 걸으멍 그렇게 호수를 향해 내려갔다.


호수에 도착해서도 천천히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호수 입구에서 마주쳤던 한 인도인이 내게 짜이를 한잔 건넸다. 인도 여행 시 주의할 점 중 하나는 낯선 사람이 건네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은 아닌 듯 보였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는 정말 고맙지만 배가 불러서 먹을 수 없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이 역시 거절을 하고 호수를 떠나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인도를 여행하며 이런 일들을 많이 겪었다. 워낙 밝은 성격 탓에 나는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상당히 잘 어울리곤 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한국인, 외국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인도는 워낙 사건사고로 악명이 높았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생겨난 수많은 주의사항들이 있는 곳이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이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당시에는 워낙 사람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만나는 사람을 의심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 불편했다. 그렇지만 안전이 최고이니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나빈 가족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세상에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회사에서도 가끔 이 생각을 하곤 했다.


성 안으로 돌아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그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사막에 있던 시각, 한국에서는 입사할 회사의 사업부 배치 설명회가 열렸다. 불참한 인원들은 메일로 서류를 보내준다고 했다. 첨부된 서류에 지망하는 사업부를 적고 서명을 한 뒤 스캔을 해서 보내야 했다. 한 골목길에서 ‘인터넷 카페’라고 적힌 작은 간판을 발견했다.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터넷 카페 이지만 컴퓨터는 단 두 대뿐이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있는 도서 검색대 같은 느낌이었다. 컴퓨터 뒤 공간에는 엽서 같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사설 버스표도 팔고 여행 관련 업무도 하는 듯했다. 나는 입구에서 가까운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만약 인내심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인터넷 카페를 적극 추천한다. 컴퓨터가 느려도 정말 너무 느렸다. 인터넷 창을 하나 열고 메일함에 들어가 첨부 파일을 확인하는 데만 십 여분이 걸렸다. 창이 넘어갈 때마다 컴퓨터 본체에서 ‘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기계음이 들렸다. 파일을 저장하고 여는 데 또 수 분이 흘렀다. 용량이 생각보다 커서인지 무서운 단어 네 글자가 떴다. 응답 없음. 앞선 과정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서류를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희망하는 사업부는 3 지망까지 적을 수 있었다. 설명회를 듣지 못해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름만 보고 아무 사업부나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서류 한 장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 지를. 비슷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격차가 생기게 되는지를. 이로 인해 몇 개월 뒤 나는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사업부 중 한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허나 그때는 그런 미래를 알 리가 만무했다. 물론 세상에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하듯이 나는 그 사업부에서의 경험도 만족스러웠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그 때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서류를 무사히 전송하고 나니 어느덧 밖은 어둑해져 있었다. 중간중간 컴퓨터가 작동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인터넷 카페 주인과는 어느새 또 친해지고 말았다.


인터넷 카페를 나와 피자가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루프 탑 레스토랑에 갔다. 루프탑에 올라가니 먼저 온 손님이 한 명 있었다.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하여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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