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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Mar 05. 2022

그리스 Greece

아테네 / 자킨토스 / 델피 / 메테오라




앉아서 킬리만자로 구경하기


 마다가스카르에서 케냐,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로 가는 날.

 탄자니아 상공을 지나는데 기장이 안내방송을 한다. 현재 우리 비행기가 킬리만자로 상공을 날고 있다고, 창밖을 보라고... 킬리만자로가 이렇게 생겼구나. 정말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처럼 동그란 분화구가 인상적이었다. 만년설이 많이 녹았다더니, 한눈에 보기에도 느껴졌다. 10년 뒤엔 더 녹아버렸겠지?!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기장은 비행기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킬리만자로 상공을 한 바퀴 돌아주었다. 작은 배려지만 참 기분이 좋았다.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게 해 주다니... 이날 이 기장님이 아니었다면 킬리만자로 위를 지나가는지도 몰랐겠지?! 기장님은 매일 보는 킬리만자로였겠지만 누군가에겐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킬리만자로였다. 

 킬리만자로를 다녀온 사람에게 듣자 하니 이백만 원 남짓한 비용을 지불하고 2박 3일 혹은 3박 4일의 살인적인 스케줄로 정상에 다녀오는 투어를 진행해야만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도 고산병을 만나면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 

 그런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비행기에 편히 앉아서 360도 파노라마로 보다니!

 기장님 복 받으실 거예요-







여신상을 돌려줘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파르테논 신전을 보겠구나!

 다들 그리스 로마 신화 한 권쯤은 봤을 거다. 그게 만화든 책이든 영화든, 바로 그 그리스 로마 시대의 배경인 아크로폴리스, 또 파르테논을 본다고 생각하니 다른 나라나 장소와는 또 다른 기대감이 솟았다. 

 그런데, 파르테논은 수리 중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신들의 집. 웅장함을 생각하며 아크로 폴리스에 올랐으나 웅장한 공사 스케일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도시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이렇게 신전을 지어두다니 그 옛날 파르테논에 올랐던 모든 사람들도 지금 내가 느꼈을 경이로움을 느꼈겠구나 싶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소니 카메라가 고장 났다. 그래도 다음 나라가 그리스니까, 유럽에선 뭔가 수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아테네 시내 카메라 수리점을 찾아갔다. 다행히 수리가 가능하단다. 카메라를 맡기면서 수리점 직원분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래 아크로폴리스는 봤어? 박물관은? 새로 지은 박물관 좋지?' 하면서, 그런데 그들이 역정을 내기 시작한다. '너네는 아니 우리 신전에 있던 여신상 하나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거 알아? 돌려달라니까 관리가 안된다면서, 마땅히 놓을 곳도 없어 보여서 안 준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박물관을 만들어버렸지' 하는 것이다. 역시,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게다가 원래 핑크빛이 도는 아주 아름다운 빛깔의 대리석인데 영국인들이 변색된 걸로 착각해서 하얗게 표백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룩소르 신전 입구의 피라미드 2개 중 하나도 루브르에 있고, 아크로폴리스의 여신상 중 하나도 대영박물관에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의궤를 영구임대 형태로 반환받았고... 여행을 하다 보니 대영박물관과 루브르가 다시 보인다. 거대한 약탈 보관소랄까.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바로잡혀가길 바라본다.





아킬레스의 보트

 

자킨토스 터미널에서 시내로 들어가려는데, 택시비가 생각보다 비싸다. 좀 셰어 하면 좋으련만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보인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흔쾌히 택시 셰어에 응한다. 청년도 온라인으로 만난 여행 메이트와 곧 만날 예정이고, 차를 렌트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인 네 사람이 자킨토스섬에서 뭉치게 되었다.

 자킨토스섬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나바지오 해변을 보기 위해서다. 나바지오는 난파선 해변으로 유명한 자킨토스 섬의 한 해변. 한국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로케이션으로 유명한 곳이다.  난파선 해변은 밀수꾼들이 버리고 간 배가 덩그러니 남겨진 해변으로 절벽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나바지오 해변에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어 상품을 이용해 나바지오 해변으로 와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즐기다 나간다.

우리 넷도 그런 투어상품으로 나바지오에 가려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렌트한 차가 있으니까, 발품을 좀 팔아서 혹시나 조금 더 저렴한 투어상품이 없나 알아보러 다니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나바지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 전망대에도 가고, 자킨토스 주민이 파는 로컬 와인도 사고 섬 구석구석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 내린 어느 해변. 간판에 한국말이 보인다! '티켓을'이라고 분명히 적혀있었다.

 여행사에 들어가니 젊은 청년 하나가 우리를 깜짝 놀라며 쳐다본다. 한국사람이냐고. 왜 그렇게 놀라나 했더니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지금 한국에 있단다. 그래서 간판에도 한국어를 적어놓은 거고. 우리도 놀랍다. 자킨토스 섬의 메인 타운도 아닌 곳에서 한국에 친척이 있는 여행사 사장을 발견하다니. 우리가 나바지오에 가는 투어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하니, 투어보다는 보트를 렌트하는 게 낫지 않겠냔다. 원하는 만큼 나바지오 해변을 즐길 수 있다며, 투어는 고작 한 시간이라 너무 짧단다. 흠. 좋은 생각이긴 한데, 보트를 몰 줄 알아야 말이지.

그런데 터미널에서 만났던 한국인 동생이 갑자기 물어본다. '보트 운전 면허증 안 가져왔는데 괜찮아?' 우리 셋다 놀라 눈이 마주쳤다. 알고 보니 그 동생은 특전사 출신이었던 것!

 그렇게 특전사 출신의 보트 운전이 가능한 동생 덕에 작은 보트를 하나 빌리게 되었다. 보트 주인의 이름은 '아킬레스' 무려 전쟁의 신이다. 아킬레스는 처음엔 우리가 제시한 가격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한국에 친척이 있다는 그 친구의 설득으로 우리에게 보트를 빌려주게 되었다. 특전사 동생의 활약으로 우리는 나바지오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맥주를 홀짝일 수 있었다. 수많은 투어 배들이 오갔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바뀌는 나바지오 해변을 느긋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항구에 돌아오니 아킬레스가 맞아준다. 그봐 보트 대여하는 게 훨씬 낫지?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이날 처음으로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보트 면허를 따야겠다고... 언젠가 다시 자킨토스에 가게 된다면 그날 특전사 동생에게 배운 대로 멋들어지게 보트를 몰아보고 싶다. 다시 그리스에 가기 전 까진 꼭 보트면허를 따야지.






메테오라


박해를 피해 절벽 위에 수도원을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메테오라를 만들었다. 지형도 독특한 데다 바위 절벽 위에 지어진 수도원을 볼 때면, 대체 어떻게 지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메테오라는 광범위하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렌트했다. 가장 저렴한 오토바이를 렌트했더니 10분도 안되어서 샵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르막길을 오르지 못할 정도로 힘이 달리는 오토바이였던 것. 괜히 뒤에 탄 내가 무거워서 그러나 미안할 만큼 오토바이는 달달거렸다.

 다시 돌아간 오토바이 가게에 얘기를 했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면서 자두를 한 바가지 내어주신다. 이런 시골인심이라니. 너무 정감 있다. 연두색 자두라 아주 떫을 줄 알았는데 꽤 달았다. 자두를 네댓 개 먹다 보니 뭔가 수리를 마치셨나 보다. 다시 오르막길 도저언~ 뭘 어떻게 수리하셨는지 이제는 잘 올라간다.

 수도원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해 질 녘엔 풍경이 멋들어진 곳에서 일몰을 감상했다. 다들 우리 같은 생각이었는지 일몰 포인트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마을 청년들이 말을 걸어온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몇 번 오갔는데, 금세 자기들이 싸온 와인과 체리를 내어준다. 마음이 참 따뜻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친절한가. 아테네에서는 그리스 경제위기로 인한 예민함이 온몸으로 느껴졌었는데, 자킨토스나 메테오라 같은 시골마을은 너무 평안하다. 

  다음날도 수리한 오토바이는 쌩쌩 잘 달렸고, 우리는 메테오라를 쏘다니며 즐거워라 했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메인 타운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릴 앞에서 고기를 구우시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드신다. 자세히 보니 레스토랑이다. 웃으면서 고기를 굽는 할아버지의 자태가 너무 귀여우셔서 점심은 할아버지네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직접 구워주신 수블라키는 맛있었고, 맥주는 더 맛있었다. 식사를 마쳐갈 즈음 퍼그 한 마리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아버지 눈빛을 보니 할아버지가 키우는 강아지인듯했는데, 만져주니 너무 좋아한다. 레스토랑 사람들에게 손을 엄청 탔구나 이 녀석. 계속 만져달라고 졸졸 쫓아다니는 녀석이 너무 귀엽다.

  그래서인지 메테오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자두를 내어주던 오토바이 가게 아저씨, 일몰, 와인과 체리, 수블라키 할아버지와 강아지. 지금도 그대로겠지. 메테오라는...





그리스 번외 편


1 아테네의 소매치기

아테네 시내 한가운데, 안 그래도 그리스 심카드를 사야 하는데,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심카드 사세요~'하면서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타이밍 최고. 그리하여 우리는 친절해 보이는 한 학생에게 심카드를 구매 중이었다. 한창 우리 심카드를 개통해주고 있는 상황, 학생 핸드폰을 누군가 스윽 들고 가는데 학생이 자연스럽게 다시 핸드폰을 빼앗아 든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 저 사람이 친구였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아니라 소매치기란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움은 무엇인고? 했더니 이런 일이 워낙 많아서 이제는 입씨름하기도 싫단다. 한창 그리스 경제가 좋지 않을 시기였는데, 그런 게 피부로 느껴졌다. 핸드폰 소매치기 정도는 단숨에 알아채는 아테네 학생들.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2 여기 그리스야!

너무너무 가고 싶었던 나바지오 해변에 가기 전날, 하루 종일 해변에서 먹을거리와 맥주를 잔뜩 장 봐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호텔에 돌아왔다. 그런데, 내 핸드폰이 안 보인다! 젖은 머리를 다 말리기도 전에 미친년처럼 핸드폰을 찾아 나섰다.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에도 없고, 술을 한잔했던 바에도 없다. 여행을 하면서 흘리고 다녀도 귀신같이 나에게 돌아오던 핸드폰이었는데, 아테네의 소매치기를 봐서인지 이번엔 정말 잃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찍은 사진은 어떡하지? 앞으로는 또 어떡하나- 별 생각이 다 들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다음날 아침,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날 빵을 샀던 베이커리에 가봤다. 그런데 세상에. 주인아저씨가 화알짝 웃으며 '이거 니거지? 방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잊어버리고 갔나 봐 하하하' 하신다. 내가 고맙다고 100번 인사했더니. '왜 이래 여기 그리스 야!'라고 하신다.

고마워요 아저씨 평생 안 잊을게요.


3 메테오라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할머니

메테오라를 떠나던 날. 버스터미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미국인 할머니가 계셨다. 어쩌다 보니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할머니도 젊었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셨단다! 정말 오랜만에 메테오라에 다시 와본 거라고 하시는데, 내 미래의 모습인가 싶어서 괜히 나 혼자 기분이 좋았다.

'여행하셨을 때 여행 다음의 미래가 두렵진 않으셨어요?'라고 여쭤봤더니 '그랬지, 그랬어. 주변 사람들도 너네 그렇게 다녀오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거라고 입을 댓지만, 우리가 지금 그 친구들보다 훨씬 잘살아. 그니까 너네도 걱정하지 말고 여행해-' 하시는데 너무 웃겼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걱정하는 건 다 비슷하구나. 여하튼 할머니 말씀이 맞았다. 저희 여행이 끝나고도 잘 살고 있어요 할머니.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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