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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Feb 08. 2022

나미비아 Namibia I

붉은 나미브 사막 / 오릭스 고기 / 바위너구리와 퀴버트리




나미브의 붉은 사막

          

 듄 45에 올랐더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빨간 모래는 본 적이 없다. 괜히 붉은 사막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점점 더 붉어지는 사막을 보고 있자니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어느 날은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본 적이 있어’ 이런 일몰이라면 나도 마흔네 번 정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파우더처럼 고운 붉은 모래가 바람에 날린다. 끈적한 얼굴에도 와서 붙고, 입속에도 자각 자각 붉은 모래가 씹힌다. 주머니 속에도 손톱에도 빨간 모래가 가득했지만 싫지가 않다. 한 움큼 퍼서 쥐어도 스르륵 빠져나가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해가 다지고 어두워져서야 모래언덕을 내려왔다. 붉은 모래를 뒤집어쓴 몰골을 보며 그제서야 다들 깔깔 웃었다.
 어쩌면 빨간 모래 한 톨쯤은 내 배낭에 아직도 들어있지 않을까.






오릭스 고기는 스프링복 맛이야?!
          

 아프리카는 넓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캠핑카 여행을 할 때는 주유소 간의 거리, 마트 간의 거리를 잘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중간에 차가 선다거나 밥을 쫄쫄 굶는다거나 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가 있다. 한 달 남짓 잘 해왔는데, 오늘 동선에는 정말 마트가 없다! 이렇게 되면 오늘 저녁에 도착하는 캠핑장에서 음식을 팔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도착하는 캠핑장은 애완 치타와 뒷마당의 퀴버 트리 숲이 유명한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치타의 저녁식사가 시작되는 바람에 정작 우리가 먹을 저녁거리는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치타들의 식사를 홀린 듯 관람했다. 옆 농장에서 갓 잡은 시뻘건 오릭스 고기를 뜯는 치타들은 야생 그 자체였으나, 주인아저씨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였다.
 치타에 홀딱 빠져있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도 저녁을 먹어야 했다. 흔한 소고기는 팔겠지, 하면서 리셉션에 갔더니 오릭스 고기를 판단다. 오릭스? 아까 치타가 먹던 그 오릭스요? 하니까 맞단다. 아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오릭스 고기를 모르다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신다. 오릭스 고기는 무슨 맛인가요 했더니 스프링복 맛이란다. 이건 마치 닭은 치킨이야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내 평생 스프링복을 먹어본 일이 있어야 말이지. 오늘 저녁은 굶겠다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일행들에게 여차여차해서 빈손으로 왔다. 오늘 우리의 저녁은 없다,라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당장 오릭스 고기를 사 오란다. 나미비아가 아니면 어디서 오릭스 고기를 먹어보겠냐며. 그러네- 다시 뛰어가서 오릭스 고기를 사겠다고 했다. 주인아저씨는 활짝 웃으시며 '바로 옆 농장에서 오늘 잡은 거야. 우리 치타들은 신선하지 않으면 먹질 않거든. 내가 맛있는 부위로 줄게-' 하면서 크은 고기 두덩이를 주신다. 누린내가 나진 않을까, 마블링이 없는데 질기지는 않을까, 사실 고기를 구우면서도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드디어 잘 구워진 고기를 한입 했을 때. 우리는 말을 잃었다. 너무너무 맛있는 것이다! 육질은 부드러운 데다 적당한 고기 향까지- 생긴 것도 멋진데 맛도 좋을 줄이야. 정신없이 오릭스 고기를 먹어치우고는 다들 한마디씩 오릭스 고기 예찬을 펼쳤다. 아프리카에 와서 오릭스를 안 먹었으면 아프리카를 여행한 게 아니라는 둥, 고기의 신세계라는 둥… 한국에서 오릭스 고기 집을 차리면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오릭스를 키우는 농장을 먼저 만들어야겠지? 그러다 오릭스 고깃집이 대박이 나고,,, 꺄- 여기까지 상상을 키우다 보면 조 서방이 찬물을 촤악 끼얹는다. 고만하고 자-

 내 오릭스 고깃집은 대박이었다고 흥!
 오늘, 이 캠핑장이 아니었다면, 치타들이 오릭스를 먹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이런 기회는 없었겠지. 운명처럼 다가온 너란 고기, 치타가 정신없이 뜯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퀴버트리와 바위너구리

 오릭스고기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게해준 캠핑장은 퀴버트리로도 유명했다. 캠핑 사이트 바로 옆이 퀴버트리 군락지였던 것. 뾰족뾰족 독특하게 생긴 퀴버트리 사이로 해가 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하늘은 바알갛게 물드는데, 여기저기 작은 움직임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바위너구리들이다. 아프리카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게 된 동물인데, 세상 순둥해 보이는 이 녀석들은 행동도 굼뜨고, 몸집도 동글동글한 것이 너무 귀엽다. 밋밋한 생김새가 만들다 만 것 같달까. 심심하고 굼뜬 녀석들이 해지는 퀴버트리 숲을 돌아다닌다. 너네도 석양을 구경하는거니- 귀여운 바위너구리 커플이 지는 해 앞에 그림처럼 앉아있다. 뾰족뾰족한 퀴버트리 숲엔 동글동글한 바위너구리가 꼭 있어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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