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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Mar 21. 2022

크로아티아 Croatia

자그레브 / 플리트비체 / 자다르 / 스플리트 / 두브로브니크




한여름의 자그레브


 베오그라드에서 밤새 버스를 달려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멍한 정신으로 꼭두새벽부터 자그레브를 돌아다녔다. 이른 아침의 자그레브는 꽤 한산했다. 돌마치 시장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고, 메인 광장엔 비둘기만 가득했다. 하지만 공원 한켠은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운이 나쁘게 파업이나 공휴일을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운 좋게 축제나 공연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운이 좋은 편. 자그레브 여름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의 공연은 재즈. 수많은 자그레브 시민들과 함께 크로아티아 맥주를 홀짝이며 공연을 즐겼다. 춤추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이유 없이 불안해질 때도 있는데, 이런 밤은 마냥 기분이 좋다. 느긋한 이방인이 된 기분. 





플리트비체는...

 

 플리트비체 근처, 작은 시골마을의 숙소를 예약했다. 렌터카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물가가 비싼 유명한 관광지 내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숙소는 알아볼 때부터 호기심이 생기는 숙소였다. 단독 주택의 2층 전체를 쓸 수 있는 데다 후기의 평점이 너무너무 높은 것이다. 대체 어떤 숙소일까...

 도착하니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신다. 얼굴에 인자함이 가득하다. 두 분은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셔서 구글 번역기를 통해야만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첫마디는 '웰컴 드링크는 뭐 마실래? 맥주? 주스?' 우리는 둘 다 맥주를 외쳤다. 세상에 웰컴 드링크로 맥주를 주는 숙소라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숙소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넷은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가며 꽤 오래 대화를 했다. 우리가 여행하는 얘기, 아저씨 아주머니의 아들 얘기, 새삼 구글 번역기를 개발한 사람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취기 어린 체크인을 끝내고 나니 이미 내 기분은 최고조, 게다가 숙소는 또 어찌나 예쁜지... 테라스에서 초록 초록한 정원을 내려다보며 저녁밥을 먹고 와인을 마셨더니 어느새 해가 졌다. 하룻밤만 묵는 게 너무 아쉬웠던 숙소.

 다음날, 아쉽지만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플리트비체 공원으로 향했다. 플리트비체는 명성대로 금방이라도 요정이 나올 것 같은 예쁜 공원이었다. 투명한 물 때문에 물고기들이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착시가 생길 정도. 플리트비체 공원도 참 예뻤지만 시간 이 지난 지금 플리트비체를 생각하면 그 2층 집 숙소와 주인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먼저 떠오른다.





Romantic 스플리트

 

 스플리트 해변 산책로, 비눗방울이 날아다닌다. 안 그래도 예쁜 도시에 비눗방울까지 날아다니니 풍경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걷다 보니 비눗방울의 정체가 밝혀졌다. 한 청년이 큰 그물로 열심히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청년 덕분에 수많은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른인 우리가 봐도 기분이 좋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일몰과 비눗방울이라니. 더 이상 로맨틱할 수가 없다.






 스플리트 도심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로만 유적지가 하나 나타난다. 밤이 되면 오래된 유적지의 계단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테이블로, 광장은 뮤지션들의 무대가 된다. 우리가 맥주를 한잔 다 마셔갈 즈음엔 해가 져버렸고, 광장엔 불이 들어왔다. 기타리스트는 연주를 하고 아이들은 춤을 췄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해변엔 비눗방울이 날아다니고, 유적지에선 음악이 흐르는 이 도시와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렌터카 여행


 아드리아해를 따라 세로로 길쭉하게 생긴 크로아티아는 해안도로가 예쁘기로 유명해서 렌터카 여행을 많이들 한다. 우리도 차를 렌트했고, 크로아티아와 인접한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등을 오가며 위에서 아래로 여행을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는데, 여행을 하는 내내 풍경이 너무 좋아서 항상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가다가 예쁜 풍경을 만나면 세워서 쉬어가기도 하고, 뚜벅이 배낭여행객이었다면 가기 힘들었을 해변이나 전망대에 찾아가기도 했다. 차라는 문명의 이기가 이렇게나 감사한 것이었구나 생각하면서... 감사함의 끝은 스플리트에서 브라치섬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스플리트에서 브라치섬까지는 페리로 1시간의 거리인데, 차도 함께 가져갈 수가 있는 큰 페리였다.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엔 즐라트니 라트라는 유명한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겼다. 맑은 바다에 동동 떠있자니 몇 년 치 행복을 한 번에 누리는 것 같았다.

 다음번에 혹여라도 2번째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그때는 꼭 차와 함께 해야겠다. 





시간여행, 두브로브니크

 

 우리가 방문했을 때 두브로브니크는 '왕좌의 게임'이란 미국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돌아보니 도시 자체가 중세시대였다. 내가 감독이라도 이 도시에선 그런 시대의 영화를 찍었을 것 같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스르지산에서 내려다본 두브로브니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완벽한 요새였다. 그 옛날엔 공격에 대비한 것이었겠지만 21세기 여행객의 눈엔 이 도시만의 매력포인트로 보였다. 실제로 성벽을 따라 걷는 건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이었다. 성벽 위를 걷다 보면 작은 골목, 바다, 다이빙하는 사람들, 예쁜 카페들이 내려다보였다. 그러다 해가 질 때면 안 그래도 붉은 지붕들이 더 붉게 빛났다. 불타는 지붕과 교회 첨탑을 보고 있자면 중세시대 한가운데 떨어진 시간여행자 같은 기분이 든다.

내전의 흔적.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없다'라는 말이 다시한번 생각난다.


스르지산의 일몰






두브로브니크의 밤


 밤의 두브로브니크 골목은 음악으로 가득 찼다. 큰 광장에도, 작은 골목에도 어디든 뮤지션들이 있었고, 공연은 수준급이었다. 두브로브니크가 유명해진 데는 이 음악가들도 한 몫했을 것 같았다. 깔라마리에 레몬맥주를 거하게 마시고, 광장 계단에 앉아 재즈 퀄텟의 연주를 한참 듣다가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작은 골목에 기타리스트 한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다. 정말 딱 두 사람정도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었는데, 거기에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는 자그마한 카페였다. 기타리스트는 그 테이블 사이에 앉아 연주를 하는 중이었다. 골목의 분위기도 기타리스트의 음악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차 한잔을 시켜놓고 기타리스트 아저씨의 연주가 끝나도록 앉아있었다. 여운이 이렇게 짙은 건 음악이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의 작은 골목이 주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밤의 두브로브니크에선 꼭 작은 골목 카페를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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