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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nie Apr 05. 2022

인도네시아 Indonesia I

족자카르타 / 카리문자와




족자카르타 베짝 [인력거]

한류, 한류 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다. 베짝을 타고 가던 그때,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버스 안에는 10대 소녀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한국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설픈 억양이었지만 그건 분명 ‘사랑해요’였다. 진심으로 놀랐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한 복판에서 사랑고백을 받다니. 여배우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 일까라고 생각하면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 애기들~ 사랑해줘서-






마리사의 집


예약할 때부터 족자카르타의 이 숙소는 기대가 됐다. 사진으로만 봐도 인테리어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족자카르타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 근처, 작은 골목에 있는 숙소는 겉모습부터 심상치 않았다. 숙소 주인은 20대 중반의 여자였다. 가정집을 개조한 숙소는 인테리어 잡지에 바로 소개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근사했다. 어떻게 인테리어를 했냐고 물어보니 직접 했단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숙소를 직접 인테리어 했다니 이 여자가 정말 궁금해졌다.

마리사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열면 매일이 여행하는 기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만든 게 지금의 숙소. 마리사의 바람대로 숙소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이 있었고, 마리사가 직접 꾸민 근사한 거실에서 다 같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마음이 맞는 여행자들은 저녁이면 둘러앉아 같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동글동글한 얼굴, 볼록 나온 배에 사람 웃기는 재주는 타고난 인도네시안 보이 무기,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론리플래닛 책을 10권은 넘게 들고 온 아날로그 프렌치걸 올리비아, 걸걸한 목소리로 족자카르타와 사랑에 빠졌다는 스패니쉬 걸 산드라, 허연 얼굴로 웃기만 하던 스웨디시 보이 데이비드 등등 캐릭터 넘치는 이들이 마리사의 집에 머물렀다. 마리사가 옳았다. 매일을 여행하는 기분. 사람에게 가장 좋은 자극은 사람을 만나는 거라던데, 마리사는 매일매일이 얼마나 새로웠을까. 생각한 대로 실행한 마리사의 그 추진력과, 마리사가 원하는 기운을 가진 그 장소가 참 부러웠다.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


 족카르타에 온 이유는 바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숙소 주인 마리사에게 물었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간단하게 말한다. '오토바이를 빌려! 내가 알아봐 줄까?' 하는 것이다. 일출이 유명한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기 위해서는 꼭두새벽에 출발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대중교통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사가 모르는 게 있었다. 바로 조가 평생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몰아본 게 불과 한 달 전이라는 것, 그러니까 오토바이 왕초보라는 사실이었다. 왕초보의 등에 매달려가야 하는 나도 불안한 게 사실이고... 하지만 조서방은 이미 오토바이를 빌려야겠다고 결심한듯했다. 그렇게 캄캄한 꼭두새벽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보로부두르에 다녀왔다. 다녀와서 숙소에 오토바이를 파킹 할 때 그 기분이란. 이젠 살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자신감을 얻은 조. 이번엔 프람바난 사원도 오토바이로 다녀오잔다. 이건 내 계획엔 전혀 없던 일이었으나, 활짝 웃는 조를 보니 도저히 안된다고 할 수 없었다. 일출을 무사히 보고 왔더니 이젠 일몰이 말썽인가- 일몰의 프람바난 사원을 보기 위해 우리는 다시 달렸다. 하지만 이번에 생각하지 못한 변수는 시내 운전이라는 것. 꼭두새벽에 보로부두르로 가는 길이 차가 많지 않은 고속도로였다면, 이번엔 차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은 시내 운전. 고생 고생하며 도착한 프람바난 사원에 일몰이 끝나가고 있었다. 프람바난은 아주 크고 멋진 힌두교 사원, 하지만 해가지고 난 뒤 야간 운전으로 숙소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니 풍경이 온전히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하지만 조에게 최대한 티 내지 않고 프람바난 관람을 마쳤다. 그렇게 다시 숙소로 돌아갈 시간. 호기롭게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사원을 빠져나가는 순간. 우리 둘은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도로는 퇴근하는 사람들의 오토바이로 빨간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오토바이를 본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오토바이 군단에 갇혀버렸다. 그때부터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진땀을 흘리며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 이젠 정말 살았구나 싶었다. 나 혼자였으면 도로 중간에서 울었을 거다. 이런 내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서방님, 나를 보며 말한다. '이제 진짜 오토바이 운전은 마스터했어.' 그래 당신이 좋다면 다행이다.

 지금도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을 떠올리면 사원도 사원이지만 진땀 흘렸던 오토바이 극기훈련이 생각난다. 하지만 뭐든 버릴 경험은 없다고, 그 뒤로 여행에서 오토바이를 탈 일이 정말 많았다. 그래 필리핀에서의 화상과 족자카르타에서의 극기훈련이 나쁘기만 한건 아니었다치자고.




카리문자와


 카리문자와는 인도네시아의 몰디브라 불렸다. 가운데 주도를 중심으로 수많은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였기 때문에,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예쁜 바다와 해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상낙원으로 가는 길은 쉬울 리가 없었다. 꼭두새벽, 여행사에 예약해둔 밴이 숙소 앞으로 왔다. 밴에 올라탔더니 유러피언으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 하나가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한다. 예쁜 여자 친구도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상습적인 인종차별에 적응되어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인사하는 외국인 커플은 처음 본다. 비몽사몽 간이지만 기분이 좋다. 훤칠하니 예쁜 프랑스 커플, 작고 귀여운 네덜란드 여자 2명, 우리 부부까지. 밴은 6명을 싣고 카리문자와로 가는 배를 탈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 내리니 기사가 배 티켓을 가져온다며 기다리란다. 갑자기 뽀글 머리가 귀여운 네덜란드 여자가 불안해한다. '저 사람이 정말 티켓을 가져오겠지?' 피글렛처럼 걱정 가득한 눈매를 가진 카디자는 걱정하는 모습조차 귀여웠다. 상당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면서 크고 작은 사기를 당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이 기사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기사가 티켓을 들고 왔고 우리 여섯은 안도의 눈빛을 교환했다. 무사히 카리문자와로 가는 배를 탔고, 인고의 시간 끝에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몰디브에 결국 도착했다. 





지상 낙원에서의 일상


 카리문자와는 우리 기준에선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작은 섬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든 돌아볼 수가 있었고, 숙소 옆집은 나시고렝과 미고렝 맛집이라 배고플 일도 없었다.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하면 그날은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마실을 다니며, 그 중간엔 예쁜 바다 수영을 즐겼다.

 밤이면 어디든 파티가 안 열리는 곳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사랑한 건 피시 마켓이었다. 그날 잡힌 신선한 물고기, 새우, 랍스터들이 가판대에 진열되어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고르기만 하면 즉석에서 숯불에 구워준다. 마켓엔 돗자리와 테이블이 가득했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낮에 흩어져서 놀던 관광객들이 밤이면 다 피시 마켓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잘 구워진 해산물에 맥주 한잔이면 여기서 평생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파라다이스에서의 마지막 날, 뭘 할까 고민하던 우리는 단골 투어사 존 사장님이 추천하는 프라이빗 무인도 투어를 가기로 했다. 손님은 우리 둘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존 섬이라 명명한 무인도에 다녀오는 투어였다. 우리 둘만 있는 배니까 가져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도 크게 틀고, 뱃머리에서의 스릴도 실컷 즐기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존 섬 앞에 배를 정박하더니 우리 둘보고 걸어서 섬에 다녀오란다. 무인도를 오롯이 우리 둘만 즐기게 하려는 배려였다. 수심이 얕아서 배가 정박한 곳에서부터 존 섬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가 있었다. 가이드가 쥐어준 도시락이 물이 젖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우리 둘밖에 없는 무인도로 걸어갔다. 들리는 건 파도소리밖에 없는 무인도에 둘이 앉아 점심을 먹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기분. 어디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가 있을까. 물론 정말 세상에 우리 둘밖에 안 남는다면 좀 섬찟하겠지만 '그런 척' 하는 기분은 꽤 근사했다.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 카리문자와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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