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내 기억을 담은 공간 하나쯤은 오래 존재하기를
새해의 해가 떠올랐고 숫자마저 낯선 2020년이 되었다. 그리고 확실한 이십 대의 후반에 발을 딛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하루가 저물고 하루가 시작된 것일뿐 큰 의미는 없겠지만 연말을 정리하며 한해의 문을 닫고 다음 해의 첫 날을 여는 준비작업은 나에게 그 의미가 매우 크다.
2019년의 마지막 날에도 여느 연말과 다름없이 한 해를 정리하던 스스로에게 물었다.
'올해 내가 사랑했던 공간은 어디지?'
이것은 '올해 나를 움직인 문장'이나 '올해 가장 고마운 사람'과 더불어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다.
나는 공간에 많은 의미를 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과거의 어느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 공간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유난히 감성이 촉촉했던 그때는 비를 좋아했어서인지 하교길에 비를 피하던 학교 근처 정자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학원도 빼먹고 친구들과 모여 밴드 합주를 연습하던 연두색 흡음 벽지로 뒤덮인 좁은 교회 연습실도 떠오른다. 대학생 시절, 곰팡이가 눅눅하게 슬었지만 밤새 배달음식 냄새에 뒤섞여 친구들과 잠을 자던 과방이나 4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추억을 쌓았던 (한때 홍대의 소개팅의 메카였던) 레스토랑도 그때의 내가 사랑했던 공간이었다.
기억 속 내가 사랑했던 공간들은 많은 경우 누군가와 함께 기억된다. 함께 그곳을 자주 갔던 사람이 연관되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종종 그 공간의 주인이 함께 떠오를 때도 있다.
대학생 시절, 학교 앞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을 뒤로하고 어느 골목의 조용한 개인 카페를 혼자 찾았다. 머리를 짧게 빡빡 밀고 수염을 기른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계셨다. 첫날 우연히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영수증 뒤에 볼펜으로 사장님의 인상착의가 독특하다며 그림을 그려줬고 이후 시도때도 없이 “아저씨! 저 왔어요!”하고 들락날락대는 단골이 되었다.
대학교를 다니는 5년 내내 그 카페의 모든 음료는 (내가 혼자 방문할 때를 기준으로) 늘 3,000원이었다. 사장님은 독특한 생각을 많이 한다며 나와 이야기하는 걸 재밌어하셨고 많이 예뻐하셨다. 수업이 없는 날엔 하루 종일 그 카페에 앉아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거나 카페의 3면을 덮고 있는 커다란 통유리 전체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친구들은 공강 때 나를 만나고 싶으면 늘 거기로 오면 되었고 그 공간에서 사장님의 주재(?)하에 철학과, 정치외교학과, 스타트업 사장님 등등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종종 그곳을 떠올렸지만 멀다는 이유로 거의 찾아가지 않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사장님에게 안부인사를 메시지로 전하는 것 외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도 뜸해졌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느 날 사장님이 카페의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업로드했고 그제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학교 근처에 수많은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고 운영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업로드된 사진 한 장 속에는 테이블들이 모두 치워져 텅 비어있는 공간과 수많은 단골들의 편지가 붙어있는 노란색 벽이 있었다. 며칠 동안 슬펐다. '추억이 너무 많은 공간인데 사라져 버린다니 아쉬워요.'라는 내용의 댓글조차 남길 수가 없었던 건 나 역시 사랑했던 공간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텅 비어버린 공간을 단골들의 편지와 함께 마지막 사진으로 남기는 사장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많은 단골들의 편지 사이에 깨알같이 쓴 내 편지 역시 붙어 있었던 그 한 장의 사진이 업데이트된 SNS 게시물만 캡처하여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연남동에는 내가 사랑하는 공간인 '책바'가 있다. 그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책을 세 권째 낸 작가이기도 한 '정인성'님의 신작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폐업 며칠 전, 간신히 시간을 내서 오랜만에 방문했다. 구석에 있는 사장님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폐업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정말 좋아하던 곳인데 오랜만에 와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웃는 얼굴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뼈 있는 대답을 했다.
"그러면 자주 오셨어야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공간을 아낀다면 더 자주 갔어야 했다.
말로만, 마음으로만 표현하지 말고.
작가가 자주 찾고 좋아하던 가게가 있었는데 바쁘게 사느라 찾지 않다가 폐업 소식을 듣고 공간에 대한 애정을 말과 마음으로만 표현하고 정작 가지 않았던 데에 대한 미안함에 쓴 글이었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 또한 뼈를 맞은 것 같았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자주 가던 공간이 없어지는 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 공간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어디 특이한 일인가, 너무나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랑했던 공간이 사라질 때마다 어딘가 친구를 잃은 것처럼 허전했다. 물론 한때 자주 찾고 사랑했던 공간을 언제나 계속 찾게 되지는 않았다. 바빠서, 또 더 좋은 공간이 있어서, 멀어서 등 이유도 많았다. 하지만 늘 기억 속에는 그곳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또 혼자서 찾았던 공간. 이제는 더 이상 서울 어디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공간과 그 속에 있었던 나.
그 카페를 자주 다니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연남동에 자주 찾던 파스타집이 있었다. 골목에 숨겨져 있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식당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수업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파스타가 먹고 싶으면 종종 혼자 그곳을 찾았다. 테이블은 네 개뿐이었고 사장님이 1인 셰프로 운영하는 곳이어서 음식이 나오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그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삼겹살 파스타'는 오랜 기다림을 견디기에 충분히 맛있었다. 특히 소스가 정말 맛있어서 매번 접시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한창 멋 부리기 좋아하던 때라 새빨간 머리를 하고 다니던 나를, 샛노란 머리의 사장님은 갈 때마다 기억해주시고 수줍게 반겨주셨다. 그래서인지 그곳을 찾을 때면 기분이 들떠 와인을 꼭 한 병씩 시켜서 마시고 그 여파로 일주일 생활비를 아끼곤 했다. 밤늦게까지 와인을 마시다 보면 사장님은 과일과 치즈도 내어주시고 가끔은 가게에 있는 장비로 디제잉도 보여주셨다. 나에겐 평범한 날 혼자, 특별한 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찾던 소중한 곳이었다.
몇 년 뒤 연남동의 가게가 문을 닫고 문래동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접했다. 공간이 사라지는 줄 알고 놀랐다가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지만 그러고도 몇 년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남자 친구의 생일을 맞아 문득 생각나 그곳을 찾게 되었다. 친구들이 늦게 온다고 해서 혼자 먼저 가게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 앉으려는데 눈을 마주친 사장님이,
"맞죠? 잊으신 줄 알았어요."
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이전 가게에 비해 이제는 테이블도 꽤 많이 생겼고 셰프도 2명이나 있어 음식이 빠르게 나오는 점이 달라졌지만 오랜만에 먹어도 여전히 맛있는 파스타와 서비스로 주셔서 맛본 와인 한 병, 그리고 힙하면서 아늑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서울 살이 9년 차, 이제는 낯설고 무섭지 않은 도시이지만 여전히 크고 화려한 이 도시에 나를 기억해주는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빨간 머리를 하고 혼자 파스타를 먹으러 오던 나와, 노란 머리를 하고 혼자 바쁘게 요리를 하던 사장님은 둘 다 검은 머리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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