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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Oct 27. 2019

혼자 놀기의 고수가 되면 꽤 좋은 세상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인싸’에 속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내가 무슨 인싸야~”하고 맞받아치면 “네가 인싸가 아니면 누가 인싸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예전부터 사람들을 챙기는 걸 좋아했다. 친한 친구들의 생일, 취업 날 등 특별한 기념일에는 고심해서 특별한 선물을 했고 가끔 기분이 좋은 날엔 만나러 가는 길에 꽃다발을 사거나 예쁜 디저트를 사서 선물했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라던가 매일 보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종종 편지를 썼고, 마음을 받은 사람들이 남겨 주는 진심이 담긴 감동의 한 마디에 행복해했다.


타칭, (그래, 자칭이기도 하다.) 인싸인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즐기고 오랜 친구들과 만나 어울려 놀거나 파티나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 연말이나 연초 같은 때에는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약속이 잡힌 적도 있었다. 다섯 번째 약속을 가는 날이 되면 일주일에 쓸 에너지가 고갈되어 매우 후회하곤 했지만.



그럼에도 일주일에 꼭 하루는 혼자만의 시간을 사수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는데 연애도 끊김 없이 하다 보니, 일주일에 사람들을 만나는 데 일자를 분배하고 나면 겨우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는다. 특히 평일의 휴무를 좋아하는 나는 소중하게 지켜낸 그 날이 시작하기 전날부터 설렌다. 내일은 어디에 가서 뭘 할지 찾아보느라 침대에 누워 한참 서칭을 하지만 결국 주로 다음과 같은 일정의 하루로 보내게 된다.


그 날은 아침부터 눈이 일찍 떠진다. 가방은 꼭 큰 크로스백을 준비해 많은 짐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노트북, 충전기, 일기장, 펜, 이어폰, 읽을 책, 시간 되면 공부도 해야 하니 어학책도 챙기고 가끔은 빈 종이와 색연필도 챙긴다.

그러고 집을 나설 땐 가방에 돌덩이를 쑤셔 넣은 듯 무거워 ‘다 쓰지도 못할 걸 짊어지고 나온다’며 매번 후회를 하지만 막상 하고 싶어 질 때 도구가 없으면 아쉬우니 빠짐없이 다 챙겨서 나가야 한다.




걷기 좋은 운동화를 신고 우선 편안한 카페를 찾아간다. 카페에 오래 있기로 마음먹은 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콜드 브루를 주문하고, 잠깐 있다 걸으러 나가는 날엔 토피넛 라떼 같은 달달한 음료나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가져온 잡동사니들을 우르르 꺼내놓고 하나씩 해치우기 시작한다. 글도 끄적거려보고 지난주에 일기장에 세운 올해 계획을 수정해보기도 하고 책장도 넘겨보고.... 그러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좋아하는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장착하고 무작정 걷는다. 보통 노래를 들으며 걷는데 글쓰기에 꽂힌 날은 홍대에서 시청까지 걷는 한 시간 동안 내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걸으며 블로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두 시간쯤 걸으면 이제 슬슬 다리가 아파오고 그럴 때쯤 마지막 정착지는 큰 책방이다.


매일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독서마니아는 아니지만, 해외에 나가면 꼭 그 나라의 책방에 들릴 정도로 책방에 가는 걸 좋아한다. 책방에서 나는 종이 냄새, 집중한 사람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공간을 적당히 메우는 음악 소리가 좋다. 혼자 놀기의 마지막인 책방에 들어설 때가 되면 저녁 무렵이 된다.


책방을 배회하며 요즘 관심이 가는 분야의 책들을 뒤적거리고 마음에 들면 하나 구입한 뒤 가뜩이나 무거운 가방에 무게를 더 얹어서 밖으로 나온다. 어둑어둑해진 평일 저녁엔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분주하게 집, 또는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바쁘게 걸어 다닌다. 그 사이를 봇짐을 짊어지고 걸어가다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당신들은 이제 해방된 기분으로 남은 하루를 알차게 써보려 바쁘게 종종 걷지만 나는 이미 하루를 다 보내고 쉬러 가는 중이랍니다.




‘인싸’가 ‘혼자 놀기의 고수’가 된 데에는 걷기와 글쓰기의 도움이 컸다. 걷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혼자 보내는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 싶다. 의외로 도시에는 둘도 셋도 아닌 혼자 시간을 보낼 것들이 많지는 않아서 하루를 다 채워서 혼자 보내기에 도시는 조금 어렵다. 간간이 배도 채워야 하고 긴 시간 동안 지루함도 달래야 하고 그렇다고 혼자 노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도 안 되니까.


그래서 내 생각에 도시에서 혼자 놀기 가장 좋은 방법은 첫 번째는 걷기, 두 번째는 글쓰기다. 사실 혼자 영화나 넷플릭스를 보기엔 바깥보다 집이 최고다.



하지만 걷는 건 좀 다르다. (요즘은 러닝머신 위에서 더 많이 걷는 것 같긴 하지만) 계절이 변하는 것, 오래된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생기는 변화,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간간히 들리는 대화 등 걷다 보면 길 위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들은 몇 시간을 걸어도 풍경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해 주며 귀에선 좋은 배경음악이 내내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장시간 걷기 고수인 나는 걷다가 사람이 한적한 길가에선 가방에 싸온 고구마나 모닝빵 같은 것도 잘 꺼내 먹으며 걷는다.




글 쓰는 것도 혼자 하기 좋은 놀거리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산다. 지나온 하루 이틀의 시간도, 몇 년 전의 시간도 좀처럼 뒤돌아 생각해보지 못한다. 얼마 전엔 SNS에서 그런 글도 읽었다.


물레에 찔린 오로라라니 비유력 무엇


혼자 백지를 펼쳐 놓고 (또는 빈 화면을 열어 놓고) 골똘히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회상을 하게 되고 그건 자연스럽게 기록할 거리가 된다. 그것마저 생각이 안 난다면 아무 주제나 던져놓고 생각해보면 된다. 누구를 보여주려고 글을 쓸 필요도 없는 소중한 순간의 기록이니 막힘 없이 줄줄줄 써 내려갈 수 있다.


10년이 넘게 거의 매일 일기를 써왔는데 일기를 쓰는 시간은 주로 밤에 혼자 있을 때의 생각들이다 보니 가끔 지난 일기장들을 몽땅 꺼내놓고 읽어보면 내가 떠올렸다고 보기 힘든 신선한 문장과 생각들이 많다. 혼자 있을 때는 평소보다 더 깊이 공상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엔 종이와 펜이 없어도, 노트북이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면 글쓰기가 이렇게 쉬우니 얼마나 좋아.




물론 여전히 만남을 좋아한다. 몇 개월째 운동을 하다 보니 그 좋아하던 즉흥 술자리도 사라졌고 일주일에 한 번도 약속을 안 잡는 주도 많아졌지만  ‘사람 없이는 사람으로 못 살아요’라는 어느 노래 제목이 말하듯 사람은 어울려 살아야 빛이 난다.


그럼에도 누구나 외롭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꽤 깊숙히 외롭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 외로운 걸 인정하면 편해져.’라고 쿨하게 이야기해주던 언니가 있었다. 조금 나아지긴 했었지만 인정해도 외로운 건 싫었고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게 나하고 잘 놀아줘야 한다.


혼밥, 혼코노, 혼술, 혼영 등등 ‘혼’이 붙은 단어들이 늘어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혼자 놀기에 익숙해져가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이 혼자 놀기의 고수가 되어갈수록 나도 더 외로워질 것 같아 걱정은 되지만 여전히 주위엔 혼자 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내가 뭘 할 때 가장 즐거운지가 아니라 뭘 할 때 가장 편안한 지를 찾아서 그걸로 혼자 놀아보자. 혼자 놀기도 꽤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글 쓰고 여행하며 재미있는 일을 만들려 애쓰는 기획자 보니입니다. 재미있게 읽고 공감과 덧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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