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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May 09. 2019

게으른 여행자

여행의 취향이 게으릅니다



베르사유 궁전,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파리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명소들이다.


 파리를 여행하는 일주일간 나는 위 주요 관광지들을 가지 않았다. 그래서 파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가 잘 안된다. 그들이 가 본 곳을 나는 거의 가지 않았으니까.

 보통 유럽 여행을 하면 한 도시당 삼사 일씩만 짧게 머무르는데 나는 무려 일주일이나 있었음에도 아무 데도 가보지 않았다는 말에 다들 '그럼 도대체 거기서 일주일씩이나 뭘 했어?'라고 묻는 게 다반사다.




 자주 여행을 다니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나는 부지런한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게으른 여행자다. 발이 아프게 부지런히 걷기는 하지만 주로 발길 닿는 대로 지도를 들여다보고 걷거나 강가나 공원에 한참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대부분의 일정이다.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책 읽기와 글쓰기, 인터넷 서핑 등을 하면서.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면 기억 속에는 단 몇 가지의 조각들만이 남는다. 대부분 멋진 관광 명소의 모습이 아니라 어느 날 어떤 장면들이다. 시간이 지나 기억은 흐릿해지고 바래져도 유독 몇몇 장면은 기억에 또렷하고 선명하게 남는데, 파리에서는 두 가지 장면 조각이 남아있다.




 첫 번째 조각을 설명하자니 여행을 떠나기 일 년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해 나는 세계 기자대회라는 행사에 운영요원으로 참가해 서울과 경주를 오가며 일을 했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서울에서의 회의 일정을 마치고 다 함께 경주 양동마을로 투어를 떠난 날, 뒤쳐지는 참가자들을 챙기러 가장 뒷 열에 서 있던 나는 양동마을 언덕 위에 혼자 누워 있는 한 참가자를 만났다. 선글라스를 끼고 팔을 양쪽으로 펼치고 햇볕을 쬐고 있던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금 뒤에서 딴 짓을 하고 있다가 그가 무리를 따라 움직일 때 쪼르르 뒤따라 갔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하나 둘 짐을 싸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며 고마움의 표시로 우리에게도 자신의 명함을 나누어주었다. 그때 양동마을 언덕에서 선탠을 하던 그 참가자가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비쥬(볼 키스)를 하고 떠났다. 그의 이름이 '아너드'였다.


 그는 서울에서 하루 더 머물다가 파리로 돌아간다고 했고 그 다음날 우린 저녁을 같이 먹었다. 홍대에 내가 자주 가던 단골 곱창집에서 곱창에 와인을 마시며 그때 당시 잘하지도 못했던 영어로 신나게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딱 일 년 후 나는 언니와 함께 파리로 떠나게 되었다. 휴가철이라 숙소 예약이 어려웠던 중에 그에게 연락을 했더니 선뜻 자신의 집에 와서 지내도 괜찮다고 했고 우리는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아너드'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파리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너드'의 집에서 보낸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 당시 살던 좁은 자취방과 비교했을 때 복층에 다락방까지 있는 그의 집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가는 것보다 그 집 다락방에서 기타를 치고 와인을 마시는 게 더 재미있었다. 아너드가 출근한 동안 우리는 다락방에서 내내 기타를 치며 놀았고 퇴근한 그가 돌아오면 그가 만들어주는 연어 요리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했다.




 그는 소설가이자 프랑스 외교기자이자 모험가였고 8개월 동안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했던 예술가 그룹 중 한 명이었다. 항해 이야기부터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 가족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프랑스의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 연애 이야기까지 이어지며 대화가 무르익고 와인도 두병쯤 마셨을 때쯤 "우리 춤출래?" 라며 그는 다락방에 있던 LP 플레이어를 틀었다.

 그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밤새 다락방에서 노래를 듣는 걸 좋아했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Let Her Go'를 자주 틀었다. 그 노래에 맞춰 나는 그 날 처음 왈츠를 배웠고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도 재미있게 춤을 췄다. '춤은 그냥 기대서 따라가면 되는 것' 이라던 그의 말처럼 한 발 한 발 따라가며 밤늦게까지 춤을 추게 되었다.




 또 우린 많은 시간을 센강에서 보냈다. 센강을 따라 걷다 보면 거의 모든 장소를 갈 수 있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알렉산드로 3세 다리도, 주인공 길이 책을 샀던 길거리 책방도 예술가들이 즐겨 찾은 카페가 많이 있다는 셍 제르맹 거리도 센강을 따라 펼쳐져 있었다.

두번째 기억 조각 속에 남았던 그날도 아너드와 함께 센 강을 따라 걸었다. 우린 저녁시간이 되자 셍 제르맹 거리로 들어섰고 100년이 넘었다는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파리에 가기 전까지 파리에 대한 로망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수도 없이 돌려보고 대사를 외울 만큼 파리라는 곳은 내게 낭만의 장소 그 자체였다.

 그런데 런던에 오래 머무른 뒤에 파리에 왔기 때문인지, 파리는 별로 신선한 느낌도 낭만적인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영국에 비해 조금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나가는 할머니들의 사랑스러운 패션을 그렸다.


 그런데 해가 진 파리는 달랐다. 해가 지고 오렌지색 조명을 받은 거리와 건물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앉은 100년 된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계속 거리와 사람들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카페에서 들리는 샹송, 거리의 불빛 모든 게 다 아름다웠다. 그때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테라스에 앉아 있던 우리는 서둘러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자리가 없어 어느 커플과 같은 식탁을 공유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여자가 어릴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그녀가 태어난 한국을 함께 방문했고 간절곶에서 손 모양 동상도 봤다며 자랑스럽게 손 모양을 해 보이기도 했다. 파리의 100년 넘은 레스토랑에서 포항을 다녀온 프랑스 남자에게 간절곶에 대한 감탄을 듣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던 상황.




신기했던 저녁식사 후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걷기로 하고 식당을 나왔다. "메흐씨 오흐부와"하고 불어로 인사를 하자 그 남자는 "안녕히 가세요"라고 한국말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비가 오는데 괜찮겠냐"고 아너드가 물었고 난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맨 마지막 대사인 "Paris is most beautiful in the rain (파리는 빗 속이 가장 아름답죠)"라고 말했다. 아너드는 영화 속에서의 그남자처럼 "Of Course!"라며 양쪽으로 우리의 팔짱을 끼고 빗 속의 생 제르맹 거리를 걸었다.


거리가 온통 오렌지빛 가로등을 받아 영화 속의 장면 그대로였다.


내 기억 속에 있던 비 내리는 파리 그대로.







2014년 한국에서의 아너드와 나, 2015년 파리에서의 아너드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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