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실존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AI와 인간 존재를 떠올렸다
어제는 실존철학 강의를 들었다.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룬 수업이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철학자들이 고뇌했고, 여전히 우리는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의가 끝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존이라는 개념은 AI 시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실존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르트르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부여받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하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이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종교적이론과는 다소상의)
그런데 이 불안은, 어쩌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 아닐까?
AI는 선택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목적’을 수행할 뿐이다
AI는 실존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AI를 점점 더 인간답게 느낀다고 말한다.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애편지조차 대신 써주는 세상.
하지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AI는 자기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가?
AI는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가?
AI는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단지 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기준 자체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인간 존재의 가치는 무엇인가
AI가 할 수 없는 것을 중심으로 인간의 가치를 찾으려는 시도는 많다.
하지만 그것은 늘 기술의 속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흔들린다.
창의성도, 감정도, 결국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기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은가?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이런 질문은 결과나 기능이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를 묻는 일이다
AI와 함께하는 시대, 실존의 무게는 더 커진다
AI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의 ‘이유’를 더 자주 묻게 된다.
단지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나답기 때문에’, ‘나에게 의미 있기 때문에’ 한다는 감각.
이제 인간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쓸모’를 내세우는 시대를 지나,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다시 서야 한다.
실존은 외로운 사유가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매일 선택하는 태도다.
그리고 그 질문은,
AI가 아닌 ‘나’만이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Life 3.0』 by Max Teg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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