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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성, 이제 말보다 옷이 말하게 하라

슬로 패션 브랜드의 전략 전환

"지속 가능한 브랜드입니다." 한때 이 말만으로도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윤리적 소비가 유행처럼 번지던 2010년대, 수많은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지속 가능성, 친환경 소재, 공정무역 등을 내세우며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하지만 2025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이러한 메시지에 무뎌지고 있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때론 피로감을 안기기도 한다.


스웨덴의 슬로 패션 브랜드 Asket은 이러한 소비자 반응의 변화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때 공급망의 투명성과 제품 수명의 연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The Pursuit of Less"(더 적음을 추구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본질적인 제품만을 강조하던 Asket은

"Permanent Designs, Obsessively Refined"(영원한 디자인, 집요하게 다듬다)로,

유행보다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있는 새로운 메세지를 내걸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실천은 변함없이 유지하면서도, 더 이상 그것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 대신 브랜드는 디자인의 정교함과 제품 자체의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처:Asket 공식 웹사이트

Asket은 최근 캡슐 컬렉션 전략을 도입해 전체 제품 라인을 50개 품목으로 제한했다. 신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하기보다는, 기존 제품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환경적 책임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깊은 고민의 결과다. 공동 창업자인 바르드 브링게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제품 그 자체,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감성과 철학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는 H&M과 같은 대형 브랜드의 제품보다도 Asket의 옷이 더 잘 팔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제품이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런던을 기반으로 100% 업사이클 데님과 지역 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지속 가능 브랜드 ELV Denim의 창립자 애나 포스터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그녀는 2018년 런던에서 업사이클 데님 브랜드를 설립한 이후, 지역 내에서 생산을 완료하는 초지역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런던 패션위크에서 설치 작품으로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도 요즘은 "지속 가능한 브랜드"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한다.


“이제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눈을 굴려요. 피곤해졌다는 거죠.” 대신 그녀는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그것이 전하는 정직한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버진 섬유를 쓰지 않겠다는 철학은 고수하며, 업사이클링의 진정성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출처:ELV Denim 공식 사이트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마케팅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소비자의 행동 변화에 대한 반응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여전히 지속 가능한 소비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구매 결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디자인, 스타일, 가격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위한 전략 커뮤니케이션 회사인 BPCM의 공동 창립자인 캐리 엘렌 필립스는


“겉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윤리적으로 생산된 바지라도 팔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소비자는 지속 가능성을 원하지만, 그것이 '멋진 옷'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브랜드들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성이라는 철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Asket은 그 해답을 '확장 가능한 지속 가능성'에서 찾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Asket의 연 매출은 약 1,600만 달러(1억 5,600만 스웨덴 크로나)로, 전년 대비 성장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과거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던 시기와 비교하면 다소 둔화된 수치다.


하지만 Asket은 향후 325%의 성장률을 목표로 하면서도, 터무니없는 성장 야망은 갖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계획된 노후화 없이도 수익성과 성장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애나 포스터 역시, 제품 중심의 전략 전환이 자신이 고수해 온 지속 가능성의 철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10년 후 모두가 지속 가능성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더라도, 저는 여전히 버진 섬유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핵심 가치는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이처럼 슬로 패션 브랜드들은 이제 말이 아닌 '옷'으로 말하려 한다.


이 변화는 소상공인과 예비 창업자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Asket처럼 제품 라인업을 줄이고, 완성도에 집중하는 전략은 자원이 한정된 창업자에게 더욱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굳이 '지속 가능성'을 말로 강조하지 않더라도, 지역 생산, 소량 제작,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처럼 작지만 진정성 있는 실천이 소비자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ELV Denim이 보여주듯, 작은 브랜드일수록 스토리보다 제품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


말이 아닌 제품 그 자체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브랜드 철학이자 생존 전략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그것을 실천하며 그 정신을 제품에 녹여낸다.


소비자는 점점 더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더 현명해지고 있다.


진정성을 말로만 외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브랜드는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주고, 소비자는 그것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다.


참고자료.

1. Asket 공식 웹사이트

브랜드 소개, 제품 철학, 지속 가능성 전략 등

https://www.asket.com

2. Business of Fashion – Asket 리브랜딩 관련 기사

“Sustainability Takes a Back Seat Even at Sustainable Fashion Brands”

https://www.businessoffashim/articles/sustainability/sustainability-takes-a-back-seat-even-at-sustainable-fashion-brands

3. Business of Fashion – 슬로 패션 불황 분석

“What’s Behind the Slow Fashion Recession?”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sustainability/whats-behind-the-slow-fashion-recession

4. ELV Denim 공식 사이트

업사이클링 데님 브랜드 소개 및 제품 보기

https://www.elvdenim.com

5. Business of Fashion – Allbirds 그린 마케팅 실패 사례

“Allbirds’ Zero-Carbon Shoe Launch”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sustainability/allbirds-zero-carbon-shoe-la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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