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놀룰루 Oct 17. 2023

무리를 등지며 걸어가는 길

맞건 틀리건 그 길은 결국 내 안에 켜켜이 쌓인다.


30대가 되니 주변 또래의 삶과 나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대다수의 친구들을 보면, 문득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검열하고 멈추곤 했다.

그들에게 비춰 나를 보면 철없고 여전히 아이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내 삶을 사랑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에 서서 아슬아슬한 삶을 지속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베트남 사파의 소수민족 마을인 깟깟마을에 갔을 때였다.

매표소에서 받은 작은 지도 한 장을 펼쳐 들고 마을 곳곳을 둘러보다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깟깟마을의 하이라이트 폭포에 도착했다. 한참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돌아가야겠다 싶어 지도를 펼쳤는데 아직 남은 길이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그곳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폭포에 내려온 길로 다시 올라가 내려올 때 봤던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도엔 스폿이 하나 더 남았다고 하는데 다들 돌아가는 분위기라 나도 한참을 갈팡질팡 하고 서 있었다.
그래도 기왕 온 거 깟깟마을 전부를 둘러보고 싶은 욕심에 마지막 스폿을 향해 나아 가기로 했다.

하지만 가도 가도 목적지인 마지막 스폿은 나오지 않았고 상점들로 화려했던 풍경이 바뀌고 오히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무서웠다.
 중간중간 마을 사람들이 보이면 달려가,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여러 차례 물어보았다. 하나같이 길이 맞다고 말해줬지만 이상하게 내가 향하는 길에 의심이 들었다. 앞서거나 뒤서는 사람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향하던 방향을 등지고 걷는다는 생각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냥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돌아갈걸 하며 후회도 했지만 꾹 참고 계속 가다 보니 결국 최종 목적지에 닿았다.
 그 길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향했던 방향과 연결되어 있던 길이었다. 결국 이렇게 도착할 거 왜 이렇게 불안해했던 걸까?
 


베트남 사파 깟깟 마을의 하이라이트 폭포로 향하는길

그날의 그 모습이 내 삶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길을 걷다가 계속해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의심하는 나의 모습 말이다.

이날의 모험 덕분에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출구는 보일 거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니 의심의 마음은 내려놓고 풍경을 즐기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자고.


물론 우리 삶에는 지도나 나침반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 맞게 가는지도 틀리게 가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하나 분명한 건, 맞건 틀리건 그 시간과 길은 흐르지 않고 내 안에 쌓인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길과 시간은 수평의 일직선 모양으로 길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날의 여행이 나에게 이야기가 되었고 깨달음이 되었듯 어쩌면 수직의 모양으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내가 가는 길을 의심하지 않길 바란다. 그게 어디든 분명 나에게 켜켜이 쌓이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03화 나의 여행, 삶 그 모순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