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행자의 여행법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을 즐기는 가난한 여행자는 될 수 있으면 모든 부분에서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들처럼 호화로운 호텔, 편리한 택시를 이용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아낄 수 있겠지만 가난한 여행자라면 모름지기 부족한 돈은 체력으로 때우는 게 최고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신경 써서 아끼는 부분은 여행 중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숙소와 교통 비용이다. 그중에서도 택시를 타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가능하면 도보를 이용하고 도보로 이동할 수 없는 거리는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탄다.
아유타야라는 태국의 경주를 간 적 있다. 이때 나의 짠내력은 최고치를 향했다.
볼 거라고는 유적지가 전부라 대부분 여행자는 당일 투어를 하거나 길어 봤자 1박 2일을 묵는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뚝뚝이라 불리는 택시를 타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방팔방에 위치한 유적지에 가기 위해선 택시를 타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많은 걸 아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한 시간에 150밧, 한국돈으로는 5천 원의 저렴한 비용이지만, 현지인 물가로 살아가야 하는 나에겐 3끼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몰아서 볼 수 있는 유적지를 일주일에 나눠서 천천히 구경했다. 아유타야를 여행한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설렁설렁 사원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늘이 하나 없는 때볕을 자랑하는 이곳의 낮 시간대는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다. 쨍쨍한 햇빛 아래 걷느라 한 바가지 쏟아낸 땀을 식힐 겸 카페나 그늘이 있는 공원으로 가서 휴식을 취한다. 땀이 식을 때쯤 되면 해가 떨어지려 한다. 그 제야 표를 끊고 사원으로 입장한다.
아마 이곳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유타야 사원들은 해가 질 무렵 가장 절정의 매력을 뽐낸다.
낮게 비추는 빛이 오랜 세월을 견뎌온 건물들 틈 사이로 비춰올 때면 그때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이 황홀하다. 비교적 선선해진 날씨와 노을이 지는 풍경은 덤이다.
그렇게 해가 모두 떨어져 깜깜해질 때면 다시 왔던 길로 걸어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간다.
도보로 이동하기엔 조금 먼 곳은 썽태우라고 불리는 버스를 이용했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썽태우는 노선이 있지만 노선이 아닌 곳에서도 손을 흔들어 세우고 내릴 수 있는 정겨운 버스다. 나름 벨도 있어 하차하려면 벨을 눌러 내린 뒤 기사님께 가서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이곳 아유타야 썽태우는 여행자들이 이용하지 않아 노선에 대한 정보도 외국인을 위한 친절한 설명도 없었다.
썽태우를 타기 전 며칠 동안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정류소와 썽태우에 적힌 노선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노선을 번역해 가며 용기를 내서 썽태우를 타고 여행을 했다. 요금은 단돈 5밧 200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실시간으로 구글맵 위치를 확인해 가며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돌아올 때는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큰 길가까지 걸어 나가 가까스로 성태우를 탔다.
물론 대 성공이었다.
궁상맞고 무모했지만 남들이 경험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 아유타야를 즐긴 경험과 성취감은 내내 나의 자랑거리다.
이밖에도 택시를 타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은 엄청나다.
자전거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가는 길에 마주한 개떼에 습격을 받기도 했지만 가는 길 내내 태국 시골마을 프래의 풍경을 구경한 경험,
자전거로 하루종일 섬 한 바퀴를 돌다가 갑작스러운 비에 홀딱 젖었지만 일본의 작은 섬 요론토의 사탕수수 밭 사이를 구석구석 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 경험,
엄청난 무더위에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힘들고 지쳤지만 베트남 사파의 깟깟마을 학생들과 나란히 걸어오며 잊지 못할 풍경을 만나고 시원한 음료로 갈증을 해결했던 경험 등
택시를 타지 않고 몸과 시간을 투자하며 여행하다 보니 남들은 경험할 수 없는 여행지의 구석구석을 만난다.
겨우 1-2만 원을 아끼기 위한 나의 눈물 나게 짠내 나는 여행은 그 어떤 순간보다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나의 삶에 이야기가 되어주고 삶의 큰 용기가 되어 준다.
이젠 아낄 수 있다는 생각보단 천천히 여행하며 우연히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이 짠내 나는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시간과 편리함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백번 공감한다. 그렇게 번 시간과 체력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짠내 나는 여행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보고 경험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하지 않은가. 여행에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여행은 결국 과정이다. 그 과정이 즐거울 수 만 있다면 그 과정을 무엇으로 채우든지 상관없지 않을까? 무언가를 보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면 모두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