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면 내 움직임을 관찰하고 관리한다.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하며 나의 생각과 행동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다.
" 태국에서는 태국의 속도로 걸어야 해요 "
내 첫 해외 장기 여행지, 태국 방콕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자분이 나에게 해준 말이다. 동남아에서 그렇게 빠르게 걷다간 힘들고 무더위에 금세 지쳐버리고 만다고, 그러니 태국의 속도로 천천히 걸으라고 말해줬다.
그 후로 나는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태국의 속도를 관찰했다. 무더운 날씨인 탓인지 태국사람들은 지나치게 느리고 여유롭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낭만이 있다. 그중 내가 생각한 최고의 낭만은 노을이 질 때면 어김없이 강가로 모여 맥주를 마시며 붉게 지는 해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나도 태국에서 지내는 동안만큼은 태국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려 노력했다.
태국 방콕의 <차오프라야강> 노을이 지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공원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긴 여행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서울만의 고유한 속도와 온도가 온몸으로 뼛속까지 느껴졌다.
빽빽이 눈앞에 펼쳐진 건물들과 그 사이를 쌩쌩 달리는 차, 그리고 그 옆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서울에 도착하니 그 빠름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공기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도시로 돌아오고 첫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던 날 나는 호되게 서울의 속도에 당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1시간이 되는 길을 걸어 다녔다. 환승하기 위해 이동하다 보면 내 옆으로 쌩쌩 달리는 사람들이 불편해서였다. 그렇게 내 옆을 빠르게 지나쳐가면 나도 덩달아 뛰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몰려드는 게 싫어서다. 그냥 내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걷고 싶었다.
느림과 빠름, 도시와 도시를 넘나드는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이 속도의 차이를 받아들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에선 덩달아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래 서울은 이렇게 바쁘고 빠른 게 매력이지' 하면서 말이다.
각 도시마다의 미묘하게 다른 고유한 속도가 있다. 그 속도가 만들어내는 그곳만의 사람들의 태도, 공기나 소리들이 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그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그 속도에 함께 발맞춰 가는 즐거움도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그게 어디든 어떤 속도건 간에 각각의 속도에 맞춰 흘러가는 유연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