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고 비로소 우울과 마주했습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우울과 싸우며 보냈습니다.
내게 우울함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감정이었습니다.
너무도 가까워 멀리 달아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그래서 조금은 익숙해진 마음입니다.
나는 나의 본성을 우울이라 정의 내리며 살아왔어요.
혼자라는 것이 편해진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이란 감정은 쉽게 타인에게로 옮겨갈 수 있는 전염병 같은 거라고 여겨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이 짙은 우울감을 숨겨내느라 애썼습니다.
백수가 되고서도 수없이 깊은 우울감은 찾아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그래서는 안된다며 이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롱하듯 그 감정은 나를 더 크고 무섭게 덮쳤습니다.
‘나 혼자 있는데 그냥 우울하면 안 되나?’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현재 우울하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였어요.
누구에게 우울을 전염시킬 위험도 없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당장 해야 할 것 없는 백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우울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 거부하고 벗어나려 노력할 때 보다 더 빠르게 그 감정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렇게 빠져나오고 나서 그 감정을 마주할 용기를 냈습니다.
이 감정을 느낄 때 나의 몸과 마음의 변화, 그리고 그 마음이 시작된 방향에 시선을 두어 봤죠.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그 감정이 내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요.
주로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그것을 해야 할 때
저는 우울이라는 감정에 숨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들, 나를 불편하게 하는 ‘해야 하는 것’ 들을 하나 둘 제거하고 나니
그 감정을 선택하는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었습니다.
문제는 사실 그곳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느끼며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이 있다면
문제가 사실 그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도록 우울이라는 감정에만 집중하며 그 감정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감정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저의 우울처럼요.
여전히 우울과 불안 등의 감정은 여러 이유에서 종종 찾아오지만
더 이상 그것들은 두렵거나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를 좀 더 들여다보고 관찰해야 하는 신호로 그리고 그 감정 뒤에 숨은 진짜 문제를
바라봐줘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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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길고 길었던 이 감정과의 싸움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