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까지 못 가도 괜찮아요.
‘정상까지 못 간 등산도 등산으로 칠 수 있는 건가?’
한 달에 한번 산에 가야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위해
2월의 이틀을 남기고 오른 이달의 등산,
풀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등산도 싫어하는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올해 떡하니 잡고 있는 등산 키워드.
아무 생각 없이 올랐던 1월의 등산 후, 내내 앓아누웠던 기억에
선뜻 마음을 내기 어려워 미루고 미루다
이번엔 중간 지점까지만 가보자며 설득하고 설득해 산에 올랐다.
사실 ‘시작만 하면 절로 정산까지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건 너무 자기 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생각이었다.
정상까지 가기엔 내 체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시작부터 가빠지는 숨과 목에서 느껴지는 쇠맛
핑핑 도는 어지러움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까스로 오른 중간지점에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더는 안 되겠다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렇게 하산했다.
등산을 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지켰지만 어딘가 찝찝했다.
‘거기까지 갔는데 정상을 찍고 오지 , 좀!’ 하면서 말이다
나는 항상 그래왔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인정해 주지 않았다.
정상까지 가지 못한 나만 보면서
이것도 못해낸다며, 잘하는 게 없다며 나무랐다.
열심히 열심히 중간지점까지 간 나에게는 눈길도 주질 않았다.
그렇게 흘린 땀방울을 닦아내면서도 더 가지 못한 나를 매번 자책해 왔다.
이번엔 이루지 못한 높이 말고
이룬만큼의 나를 봐주기로 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산으로 향했던 마음
한없이 떨어진 체력을 붙잡고 약속한 지점까지 도달한 노력
숨이 차 더 이상은 못 가겠다 멈추다가도, ‘그래도 가보자’ 하며 오른 나의 끈기
그리고 그날 흘린 땀까지
이렇게 내가 바라봐 주지 못한 나의 노력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속에서 얼마나 주눅 들고 상처받았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이루지 못한 나 말고, 여기까지 해낸 나를 토닥이며 고생했다고 말해주자.
이만큼이나 해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