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고쿠라역으로 이동하기
2010년 일을 시작한 이후, 몇 개월 동안 쉰 적이 첫 직장을 관둔 이후에는 없었던 것 같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현재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이 직장이 좋았다. 다만, 연초부터 계속해서 달렸던 프로젝트로 인해 번아웃이 왔고, 전반적으로 삶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고민 끝에 추석 연휴를 이용해 휴가를 내기로 결정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나에겐 익숙하지만 한국인이 아직은 많이 찾지 않는 곳인 기타큐슈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진에어 (무료 수화물 15kg) ₩186,700원
가는 편 2023년 10월 3일(화) 오전 7:15 → 오전 8:40
오는 편 2023년 10월 7일(토) 오전 9:40 → 오전 11:15
비행 편을 찾다 보니 추석 연휴에는 가격이 높아져, 연휴가 끝나는 날에 맞춰 비행 편을 예약했다. 코로나 전에는 10만 원대 초반이면 이동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택시비까지 포함하면 20만 원대로 결제한 셈이다. 10만 원 정도 비싼 가격에 예약했다 보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예약을 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오전 7시 즘에 출발하는 비행 편이었다. 공항까지 가려면 지하철 첫차 시간도 애매하고, 공항버스를 타도 적절한 시간이 아니었다. 최소한 새벽 5시 30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편의 단점이 하나 더 있었다. 환전 금액을 인천 공항에서 받을 수 없다는 것.
검색해 보니 매번 공항으로 환전 금액을 배달받았던 마이뱅크 서비스의 첫 배달 시간이 새벽 6시부터였다. 공항 환전소도 새벽에는 열지 않아서 인터넷을 뒤져서 환전이 가능한 곳을 찾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추석 연휴가 너무 길어서 대부분 운영하지 않았다. 다행히 서울역에 위치한 환전센터가 연휴에도 문을 열어서 환전을 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환전하지 않고 일본 도착 후 [트레블로그*] 카드만 사용할 계획이었다. 기타큐슈 공항 편의점의 ATM에서 엔화를 인출할 생각이었지만, 일본 공항버스는 현금 또는 교통카드만 사용 가능했기에 변수가 생길 수 있어 급하게 환전센터에서 교통비만 환전을 했다.
*트레블로그 카드는 환전 수수료가 없고 100% 우대로 환전되는 유용한 카드이다.
기다렸던 여행 첫날이 되었고, 새벽 4시 30분에 택시를 타서 약 40분 후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인천공항까지 48,000원이 나왔고, 심야할증이 끝난 시간인지 생각보다 저렴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택시를 타기까지 고민한 이유 중에 금액도 있었지만, 더 고민했던 것은 네비에 빨간불(제한 속도가 넘어)이 반짝반짝 빛나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달리는 택시 기사님들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택시를 타면 생각이 깊어진다. 가령 사고가 나서 여행 계획이 엉망이 되어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고, 환불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상상하게 된다.
다행히도 안전하게 새벽 5시 30분이 안 되어 공항에 도착했지만, 잠을 거의 못 자서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오랜만이었고, 소풍 가기 전 어린아이처럼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느껴졌다. 여행 관련 책을 출발하기 전에 잠시 읽었는데, 그 책에서는 여행은 "나"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니기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낯선 여행에 대한 기대를 같이 가지고 간다고 했다. 그 문장에 깊게 공감한 새벽이었다.
최근 인천공항에서는 [스마트 패스]라는 앱과 연동되는 본인 인증 서비스가 오픈되어, 긴 대기 줄을 필요 없이 얼굴 인식으로 1초 만에 통과하여 심사하는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 덕분에 대기 시간이 1시간 정도 줄어든 기분이었다. 1초 만에 심사가 완료되어 보안에 대한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 빠르게 입국 심사를 할 수 있어서 좋은 서비스인 것 같다.
새벽 공항 면세점에는 열린 가게들이 얼마 없었지만, 스타벅스만큼은 불을 반짝이며 열려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대기 번호가 불러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이 많았는지,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 아침 해를 기다리며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항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 추석 즈음이 되면 여름은 언제 왔냐는 듯 더위가 없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맴돌기 시작한다.
기타큐슈로 가는 비행기를 시간에 맞추어 탑승했다. 비행기는 소형 비행기였고 만석이 아닌 1/3 정도만 차 있었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비행기 안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새벽 비행기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지니 극도로 예민해져 갔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여행의 기념을 남기고 싶은지 아이의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했지만, 아이는 거부하며 계속해서 울음이 더 커졌다.
머리가 지끈 거리는 찰나, 옆자리에는 자매인 듯 친한 친구인 듯 매우 닮은 여자 두 명이 탔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와 방금 내가 먹었던 치킨 샌드위치를 들고 탔다. 서로 여행의 시작을 축하하며 매우 신나 하는 모습에 나는 갑자기 외로움과 불안감이 몰려왔다.
여러 생각을 하는 도중, 비행기는 기타큐슈 공항에 1시간 여만에 빠르게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머지 생활 비용을 인출하기 위해서 공항 편의점의 ATM을 찾았는데 인출은 안되고 거부되었다는 메시지만 계속 나왔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교통비는 서울에서 환전을 해왔기 때문에 시내로 나가서 다시 한번 인출을 시도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공항버스 시간이 남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찾다 보니 예금 인출 시 [보통 예금]을 꼭 선택해야 했다. 너무 어렵다. 식은땀이 쪼르르 났다. 오랜만의 혼자 여행이라 긴장을 했나 보다. 다행히 트래블로그에서 환전한 30,000엔을 수수료 없이 인출할 수 있었다.
코로나 전에는 후쿠오카, 기타큐슈, 오사카, 도쿄 등 많은 일본의 도시를 여행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난 이번 해에 후쿠오카와 기타큐슈를 다시 다녀왔는데, 둘 다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후쿠오카는 오사카와 비교할 만큼 관광 산업이 엄청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 6년 전만 해도 후쿠오카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나만 아는 소도시 같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4월 초 후쿠오카 공항에서 2시간 기다려 입국 심사를 마친 경험이 있다). 후쿠오카의 유명한 온천마을인 유후인에도 사람이 없어서 길거리가 한산했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에는 사람이 많아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래는 2016년의 유후인의 시골마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코로나 이후, 여행 열망과 보복 심리로 인해(나도 그렇고) 한국인 모두 서로 경쟁 하듯이 여행을 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후쿠오카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이번에는 한국 사람들에게 그나마 덜 알려진 후쿠오카 위쪽에 있는 기타큐슈로 결정한 이유도 있다. 아직 관광이 후쿠오카만큼 활성화되지 않아서 친절하고 느긋한 느낌이 좋아서.
오전 8시 40분에 공항에 도착하면, 시내까지 가는 버스는 1번 정류장에서 9시 20분에 오기 때문에 입국심사가 끝나고 ATM에서 돈을 뽑은 뒤에도 여유롭게 시간이 많이 남는다. 다만, 사람이 많을 경우에는 버스를 못 탈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캐리어로 줄을 먼저 맡아놓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새벽에 샌드위치를 먹어서 그런지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서 멍 때리면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고쿠라역까지 가는 공항버스는 710엔이고, 현금 또는 티켓을 공항 매표 기계에서 구매해 버스에서 내릴 때 사용한다. 일본 교통카드도 사용 가능한데 충전은 애플페이와 매표 기계에서 가능하다. 현재는 애플페이 충전은 현대카드만 가능해서 안타깝게도 나는 현금만 이용했다.
인천 공항버스도 와이파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내까지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갈 수 있어서 핸드폰 배터리를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아이폰은 미니 모델이라 서서 3시간만 지나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귀엽고 소중한 핸드폰이다.
일본 공항 버스 좌석은 성인 여자 두 명이 앉으면 충분하고, 성인 남자와 여자가 앉으면 불편할 정도의 크기다. 그리고 좌석이 넓지가 않아서 한국인 남자 두 명이 앉으면 매우 불편한 구조이다. 버스도 그렇고 지하철 좌석, 그리고 작은 이자카야의 의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만, 버스는 한국보다는 천천히 운전하고 코너를 돌 때는 운전 기사님이 항상 말씀을 해 주셔서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어서 그런 점이 좋았다.
고쿠라역에 도착하면 드디어 혼자서 여행하는 기분이 실감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