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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Apr 30. 2024

아직은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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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머리가 울려서,  어지러이 흔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속이 안 좋아서 눈을 감고 멈춰 섰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붙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길 위에 멈춰 선 채 눈을 감은 한 여자의 모습은 궁금증을 자아낼까.


덕지덕지 붙은 시선이 거둬들여지고 나서야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또 한참을 길 위에 서 있었다.


세상이 멸망한다면 좋겠다고.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좋겠다고. 한 걸음도 내딛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멈춰 있기도 두려웠으니까. 자의로 그만둘 수 없다면 세상이 멸망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투명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세상에서 내가 지워졌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나는 세상이 무서웠으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으니까. 내가 사라지는 선택지를 놓을 수가 없었다.


불안에 잠식당한 채 홀로 방치되었다. 나는 누구인지도 이제는 모호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올바른 방향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나침반은 여전히 고장 나 있고 이 길이 맞는지도 헷갈렸다.


의미가 없어서 죽고 싶었던 날이 지나니 사는 것이 버거워서 죽고 싶었다. 괜찮지 않은 날들은 그렇게 나를 좀 먹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며 살아있었다.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는 내가 모은 약은 여전히 내 손에 들려있었다.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문구를 다시 찾아봤다. 확실하게 죽을 수 있겠지. 그러한 확신이 오히려 삶을 붙들 게 했다. 여차하면 갈아 마셔버려야지. 그 생각이 나를 버티게 했다. 그러니 오늘도 살아내고 잠에 들어야지. 언제든 나는 죽을 수 있으니까. 아직은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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