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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ug 06. 2024

비 오는 날

엄마는 뭘 제일 좋아해?


엄마는 어떤 몬스터가 제일 좋아?

엄마는 이 중에서 어떤 드래곤이 제일 좋아?

엄마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해?

엄마는 어떤 색을 제일 좋아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나의 하나뿐인 아이는 아직도 하루에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한다. 어렸을 땐 곧잘 대답해 주다가 이제는 지쳐 “엄마는 잘 몰라”, “좋아하는 거 없어”라고 둘러대도 끈질기게 다음날 같은 표정으로 물어본다


“엄마엄마엄마! 엄마는 어떤 날씨가 제일 좋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뭘까. 어떤 질문에도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게 없어서일까?




어느 비가 오는 날, 장화를 신고 첨벙첨벙 뛰어다니던 아이가 나에게 이리 와보라고 소리쳤다.

"엄마엄마, 물속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어!"

비가 고여 비친 나무와 아파트를 보고, 우리가 갈 수 없는 다른 세상이라고 아이는 상상 속에 빠져든다. 행복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아이는 비가 오는 날이 자신이 좋아하는 백만 가지 중 하나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비 오는 날이 좋아, 오는 날이 좋아?"



나도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10대의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가 내리고 있으면 나는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우산이 5개 이상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며 오늘은 어떤 우산을 들고 갈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비가 내려 적당히 습기가 있는 날, 뽀송한 양말을 신을 나는 포근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가는 아침은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 되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은 비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도 싫고, 발이 축축해지는 것도 싫어 레인부츠도 장만했다. 우산은 무조건 장우산을 쓴다. 비록 비 오는 날은 내가 좋아하는 날이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모든 사소함에 관심을 가져주는 아이가 있어 '나도 전에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궁금한 건, 그만큼 그 사람에게 애정이 있다는 거라는 걸 나는 아이를 통해 느낀다.


반면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좋지 않은 지 살펴보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는 건 핑계이고 나는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그는 그 자리에, 나는 이 자리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적으며 내 마음이 아파지는 걸 보니, 남편은 나의 관심과 애정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믿기 힘들지만-내가 늘 1순위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1순위이기 때문에, 남편은 내 옆에서 늘 외로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외도가 합리화가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사랑해서 부부가 된 만큼 가장 서로에게 애정을 가져야 하는 건 우리 두 사람이라는 걸 나는 잊지 말아야 했다.



오늘은 아이에게 대답해 줘야겠다. "엄마는 할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해. 연보라색을 좋아하고 나가드래곤이 제일 좋아. 그리고 바람이 살살 부는 맑은 하늘이 있는 날이 좋아."

그리고 남편에게 물어봐야겠다. "당신은 무슨 날씨가 제일 좋아?"

내 질문을 들은 남편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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