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족 자가격리 7일의 기록
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둘째와 일어나자마자 대충 씻고 병원 오픈 전에 대기를 각오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요즘 미어터지는 병원 대기줄을 익히 아는 터라 부지런을 떤다고 떨었는데도 접수 칸 우리 앞에 벌써 10명이 넘는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진료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나은 편. 병원 밖에서 길게 복도에 대기 줄을 선 사람은 뭔가 봤더니 신속항원검사 대기줄이란다.
30분 넘게 기다리며 남편과 톡을 나누었다.
'몸은 좀 어때?'
"나도 목이 안 좋네 양호실에 가서 열 좀 재볼게"
그러더니 잠시 후...
받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우리가 지금 서있어야 할 줄은 진료 줄이 아니라 신속항원검사 대기줄이라는 것.
1시간의 진료 대기시간을 박차고 복도로 나가 긴 줄의 끝을 찾아 다시 섰을 때 이미 우린 1시간 30분을 넘기고 있었고 아이와 나는 이미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우리의 이름이 불린 것은 병원에 도착한 지 거의 2시간 반이 넘어선 점심시간 직전.
원장님 혼자 운영하는 병원에서 진료 보고, 백신 접종하고, 신속항원검사를 하며 사이사이 소독 비닐옷을 입었다 벗었다, 간간히 재택진료환자와 전화진료를 하시던 눈 돌아가게 바쁘시던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우리보다 더 지친 모습으로, 그러나 친절하신 음성으로, 오래 기다렸냐고, 증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아이가 목이 좀 아프다고 해서 진료를 왔는데요 기다리다 남편이 키트 양성이라고 방금 톡이 와서 검사해보려고요. 그런데 선생님 어제 집에서 저와 아이 둘 다 키트 음성이었거든요?"
"음.. 자가진단키트는 50% 확률이에요. 그리고 가족이 양성이라도 모두 양성이 나오진 않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은 차분하시고 여유롭게 응대하시며 우리 모녀의 코를 차례로 능숙하게 찔러 주셨는데 시약을 넣고 거의 바로 'T'에 한 줄이 뜨자
"어? 따님은 바로 양성 뜨네요.. 어.. 어머님도.. 양성이시네요"
하시며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주변을 정리하시며 소독하시고 바로 PCR 검사받아보라고 소견서를 주신다 했다. 잠시 멍이 왔지만 정신을 차려 자가격리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외출임을 감안에서 처방전도 부탁드리고 약국에 들러 약을 받은 후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고 보니 아차. 집에서 아직도 방학 꿀잠 중일 큰 녀석이 떠올랐다. 큰 아이는 이미 기숙사에서 나오면 한번, 그다음 날 집에 귀가한 아이들 중 확진자가 몇 명 나와서 남편과 함께 외출 중 바로 보건소에서 둘이 신속항원을 했던 터. 그렇지만 안심할 수 없어서 집에서 키트를 해보라 하고 회사에서 조퇴하는 남편과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 가봐야 오전 검사 다 마감일 거고 아예 선별 진료소 근처에 가서 뭐 사서 우리 셋이 차에서 먹으면서 오후 검사 줄에 서자."
"알았어. 바로 가?"
마치 비밀스러운 계약처럼 지하 주차장에서 한 차에 옹기종기 모여 계획을 잡고 일단 음성이 확인된 큰 녀석이 집 문밖에 내놓은 비닐장갑, 텀블러 셋을 챙겨 집을 빠져나온 시간이 정오가 넘어가는 시각..
지치고 목 아프고 배고픈 우리 셋은 차 안에서 김밥을 먹고 처방약까지 먹은 후, 그제서야 현타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다 접종 완료 자잖아. 근데도 코로나 걸려?? 그리고 언니는 왜 음성이야? 이상하지 않아?"
"아빠 생각에 네 언니가 우리한테 옮기고 언니는 살짝 알게 모르게 지나간 거 같아. 안 그러면 이럴 수가 없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나 토요일에 송별회 했던 선생님들한테 다 연락해야 돼 정신 사나워!!"
아 ㅠㅠ
기숙사 다니는 큰딸의 개학이 코앞이라 2월 마지막 두 주일을 두문불출하며 외출도 안 하고 지내다 새로 교적을 옮기는 바람에 이전 성당 퇴임교사들과 식사를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ㅠㅠ. 너무 미안하고 급한 마음에 톡을 남기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걱정 마세요 선생님. PCR 음성 나올 수도 있어요~'
'우리는 괜찮아요. 요즘은 어디서 어떻게 걸려도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프진 않으세요? 건강 잘 챙기세요!!"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따뜻한 메시지에 울컥하며 집에서 키트 검사는 믿을만하지 못하니 빨리 병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을 구구절절이 메시지로 보내고 나니 이미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은 노곤함을 느꼈다.
왠지 정신이 피곤해지자 증상을 못 느꼈던 목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기숙사 다니는 큰아이와 코시국에 성남시와 의왕시의 인접 선별 진료소는 다 섭렵했기에 비교적 한산한 선별 진료소라 생각한 곳으로 왔는데도 PCR 검사나 신속항원검사나 검사 시작 1시간 반부터 인산인해였다.
PCR 검사는 역학적 관련자인 경우 확인자료(키트 양성, 소견서)나 동거가족 확인이 되어야 검사가 가능하니 대부분이 가족단위가 많았고 면봉만 보고 악을 쓰는 아기들, 어르는 엄마 아빠와 지친 가운데 인내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보니 참 다들 힘들겠다 싶은 연민이 생겼다. (아. 이 감염병.. 지긋지긋하다 정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의 걱정은 단 하나. 나로 인해 감염의 위험에 처한 지인들과 그 가족..
그 누구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백신 3차 접종도 빨리 끝냈고, 웬만하면 외식을 피했는데 결국 가족 간의 '돌파 감염'이라는 변수에 허탈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코로나라는 터널의 끝을 빠져나오며 감염되지 않고 건강하기를 기도했건만..
드디어 '확진자'라는 타이틀을 걸게 되는 것인가?
문자 메시지가 도착할 내일 아침까지.. 불편하고 힘든 마음이 아픈 몸보다 더 힘들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