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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13. 2018

23. 원더풀 라이프.

내 인생人生에서 떠올릴 단 하나의 장면은...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진처럼 '찰칵' 찍혀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장면'들이 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카스텔라를 해주던 엄마의 모습, 카스텔라 냄새를 맡으며 방에서 뒹굴거리던 어린 시절 내 모습, 그 날 늦은 오후에 창문으로 들어오던 따스한 한 줄기 햇살. 나른해져서 방안에 누워있던 그 날의 장면은 내게 완벽했다. 오감으로 기억되는 행복한 스냅샷.


세상을 떠날 때 한 가지 기억만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가겠는가?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현실과 저승세계의 중간 지대, 림보가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7일 동안 머물며 직접 고른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재현하고 영원으로 떠나는 곳이다. 림보의 직원들은 끝내 가지고 떠날 기억을 고르지 못해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직원들은 각각 맡은 죽은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7일 동안 함께 죽은 이들의 기억을 되짚어 나간다. 고른 기억은 모두 함께 모여 최선을 다해 재현한다. 세트를 구성하고 옷을 맞춰 입고 기억을 재현하며 카메라로 찍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가 영화를 만드는 행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를 위한 영화에 의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모인 죽은 이들의 대부분은 배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영화가 상대방을 바라보며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카메라를 바라보며 인터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신 컷으로 카메라, 즉 화면 밖의 관객들을 바라보며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과 배우가 아닌 사람들을 기용한 점, 중간중간 실제 리허설 장면 등이 들어가 있어서 얼핏 대사 등이 흐름에 맞지 않는 점 등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감독은 그런 장면들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여 알면서 자르지 않고 넣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따뜻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림보의 세계는 완전한 아날로그의 세계다. 모든 것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리게 될 장면은 무엇이 될까를 생각했다. 그것은 드라마 '도깨비' 속의 저승이가 죽은 이들을 이끌던 마지막 테이블 앞의 이승의 기억을 잊게 하는 차와는 대비된다. 마지막이 되면 모든 기억을 잊고 싶을까, 아니면 한 가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가고 싶을까.


어느 쪽이든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이 영화를 보고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이 머물고 있는 동네에 가고 싶어 졌다. 학교 앞 고목나무는 여전한지, 매일 핫도그를 노래 부르며 엄마 치마 잡고 징징 거리던 동네 시장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뛰어놀던 동네 골목길은 똑같은지, 정육점 집 아들내미와 개처럼 싸우던 곳은 남아있는지 알고 싶어 졌다.


 이 영화만큼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영화도 없다. 지루하거나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영화 속 많은 이들의 인터뷰와 림보에 남아 자신의 기억과 싸우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내 실존적 '나'로 귀결되는 생각들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와 옛 기억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주던 카스텔라 냄새도 났다. 나로선 굉장히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행복'과 '재경험'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하는 행위도 영화를 보는 행위도 음악을 듣는 행위도 결국, 그것을 경험하는 몫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이다. 모두 자신의 경험을 곱씹고 다시 경험해보는 것이다. 영화 속 림보에서 이뤄지는 기억을 재현해내는 행위야 말로 이런 '영화'의 궁극적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를 보며 자신의 경험을 되살리며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원더풀 라이프.

우리 모두의 원더풀 라이프를 응원하며.


*그래서 결국 내 마지막 기억은 정하지 못했다. 아마 나는 림보 속에 머물며 한 동안 내 기억과의 싸움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이 글을 얼마나 오래 서랍 속에 묵혀 둔 것인지... 거기다가 인터넷이 하도 끊겨서 다 날렸다가 다시 썼다가 집어 쳤다가.. 하아.


***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참 좋아하는 감독. 곧 개봉할 영화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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