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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an 16. 2018

22. 블레이드 러너 2049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적을 본 적이 없으니까



타이렐 사에서는 인간의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 리플리컨트를 생산해낸다. 리플리컨트는 인조인간이며 외형으로 인간과의 식별은 불가능하고 오른쪽 안구 아래쪽에 쓰인 일련번호로 구별할 수 있다. 리플리컨트 모델 넥서스 6은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되었지만 넥서스 8은 자율 수명 연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구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방사능이 유출되자 인간은 식민 행성 '오프 월드'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리플리컨트는 '오프 월드' 식민 건설에 착출 되어 노예, 군인, 접대 등으로 이용당한다. 넥서스 8은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이에 타이렐 사는 파산하게 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는 넥서스 8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후 35년이 지나 마침내 드니 빌뇌브 감독에 의해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나왔다. 블레이드 러너가 2019년의 리플리컨트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 후 30년 후의 리플리컨트의 이야기니 영화 속 시간과 실제 시간이 얼추 맞게 흘러가버렸다. 


월레스 사의 나인더 월레스.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타이렐 사가 파산한 후 나인더 월레스에 의해 월레스 사가 세워지고 금지된 리플리컨트 생산을 다시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 반란을 일으켰던 넥서스 8에 비해 신 모델은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게 만든다. 이미 많은 인간들이 '오프 월드'로 이동한 후의 지구는 익숙하게 봐왔던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세기말적 풍경들이다. 경계가 무너진 어두운 도시에 눈이 내리고 형형색색의 광고판에는 온갖 나라의 말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신 모델 리플리컨트인 K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블레이드 러너다. 숨어 살고 있는 구 모델들을 찾아내 '폐기'하는 것이다. 단백질 농장에서 사퍼 모튼을 찾게 되면서 오래 감춰진 비밀이 드러난다. 사퍼 모튼은 죽음을 맞는 순간 K에게 외친다. 너는 기적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사는 거라고. 사퍼 모튼은 과연 어떤 기적을 봤던 것일까. 



태어난 존재는 영혼이 있지 않을까요



임신할 수 없는 리플리컨트가 30년 전에 아이를 낳은 흔적을 발견한 경찰 간부 조시는 이제 가까스로 찾은 평화를 다시 깰 수 없어 K에게 아이를 찾아 이 사건을 덮으라고 지시한다. 만들어진 게 아니고 태어난 거라면 그 존재에는 영혼이 있지 않냐고 묻는 K에게 조시는 영혼이 없어도 잘 살아왔다고 말한다.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다움은 어떤 것일까? 인간은 리플리컨트를 껍데기라 부르며 차별하고 경멸한다. 수시로 본부에 들어가 기준선 테스트로 복종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K는 실제로 있었던 기억이 자신에게 남아 있음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K를 조이(월레스 사에서 만든 홀로그램형 AI)는 특별하다며 '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조작된 기억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목각 말 인형이 실제로 존재함을 알고 난 후 K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난다. 


조이와 K. 인간보다 애절한 사랑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사랑도 프로그래밍 된 걸까.


옳은 일을 위해 죽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야.



데커드와 반란을 꿈꾸는 리플리컨트들을 만나면서 K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그렇게 죽을 수 있다면 가장 인간다운 일일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리플리컨트도 어쩌면 인간보다 인간답게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눈 속에서 스러져 가던 K의 엔딩은 슬펐지만 데커드와 아나 스텔리나 박사의 만남은 새로운 희망을 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른 후 블레이드 러너의 세상은 리플리컨트와 인간에게 조금은 희망적인 세상일까. 아니면...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빠져 들어가 두 번을 봤다. 책이나 영화를 두 번이나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을 좋아하고 라이언 고슬링도 좋아하지만 인간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에서 누구보다 힘겹게 살아가는 리플리컨트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이 좋았다. 이미 '블레이드 러너'가 표방하는 세상은 멀지 않았다. 심지어 리플리컨트가 반란을 일으킨 2019년은 바로 코앞이고 대정전이 일어난 2022년도 멀지 않다. 아직 리플리컨트도 없고 지구는 위기에 처했지만 '오프 월드'로 이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미 인간성을 잃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성은 단순히 일련번호로 판단받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좋았던 다른 이유는 색감과 화면 속 디자인 때문이다. 블랙과 회색빛 도시에 갖가지 화려한 색상과 패턴들이 나온다. 특히 K가 방문하면서 보인 월레스 사의 모든 디자인들이 황홀했다. 따뜻한 노란빛이지만 일렁이는 물결과 수직과 수평으로 확장되는 디자인에 의해 월레스 사는 굉장히 차갑게도 보였다. 빛과 물에 의한 색감과 패턴들은 마치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월레스 사의 입구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친절하게도 2019년과 2049년 사이의 일들을 짤막한 단편 영화들로 만들었다. 2022년 대정전 시대를 2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2036년에 나인더 월레스가 어떻게 리플리컨트를 다시 만들 수 있었는지를 10분 분량의 단편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2048년에 숨어 살던 사파 모튼이 어떻게 발각되었는지도 짧은 단편으로 만들었다. 이 세 편의 단편은 모두 유튜브에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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