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온라인 뉴스에서 어이없는 기사를 봤다. 세계 재벌들 모임에서 핵전쟁을 대비해 아일랜드인가 뉴질랜드인가 벙커를 짓고 있다는 기사였다. 모임에서 말로만 오가던 것이 최근에 실행에 옮기고 있고 핵이 터져도 견딜 정도의 벙커여서 짓는 데만 수조 원의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단다. 기사 링크를 받은 동생 왈, "아니, 세상은 멸망하는데 지들만 살아남아서 뭐하게? 나는 그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아"
최근에 아는 동생과의 술자리에서 동생의 꿈에 대해서 들었다. "내 꿈은 지구 폭발이에요." 읭?? "그냥 한날한시에 지구가 폭발해서 깨끗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동생의 지구 폭발에 대한 꿈을 응원하며 그날의 술자리를 마쳤다.
세상은 점점 더 나쁜 쪽으로 변해가고 환경은 점점 더 오염된다. 사람들은 살기 팍팍하다고 해도 점점 더 많이 소비한다. 이 끝은 무엇일까? 지구 폭발로 다 같이 사라지든 지구 폭발에 대비해 벙커를 짓든 사람들은 이 세상의 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 '더 기버 : 기억 전달자'는 그 세상의 끝에서 시작한 영화다. 세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난도 오염도 고통도 질병도 시기도 질투도 아픔도 차별도 없는 꿈의 나라를 건설한다. 커뮤니티라 명명하는 그곳은 어느 누구 하나 고통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간다. 바로 철저하게 '감정'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예전의 세상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은 규칙으로 다시 세워지고 감정에 관련한 단어들은 고대 언어로 사라져 버린다. '기초 가족'이라 불리는 거주지에 아이를 배정하고 아이들은 모둠에서 자라나며 자라난 아이들은 커뮤니티 원로들에 의해 성인이 되면 직업을 부여받는다. 모든 직업은 평등하다. 엄격한 통금시간이 존재하며 모든 기초 가족들은 24시간 CCTV로 원로들에게 감시당한다. 매일 아침이면 감정을 제거하는 주사를 맞는다.
솔직히 영화 초반에는 기어코 경계선 너머로 향하는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이 모든 감정을 앗아가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게 낫지 않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충격적인 진실들이 가려져 있다. 커뮤니티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대로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말도 없는 이곳에선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아이들을 죽인다. 임무 해제라는 말로 기념식에서 세리머니를 한 나이 든 사람들 역시 은퇴가 아니라 그대로 죽음을 맞는다. 이 또한 생산할 능력이 있는 젊은 세대만을 유지하려는 커뮤니티의 어둔 이면이다. 그리고 차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인종도 오로지 백인 하나다. 음악도 없고 서로 감정을 교류할 수 없으니 '사랑'도 없다. 경계선을 기준으로 기후도 통제되고 있어서 눈이나 바람, 비도 없다. 이 완벽한 무(無)의 세계는 사실 차이가 없는 게 아니라 아무런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그래서 영화는 기억전달자가 기억을 전달하기 전까진 흑백으로 진행된다. 감정이 없는 세상은 영화 '이퀼리브리엄'도 생각나고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는 건 영화 '플레전트 빌'도 생각나게 한다.
다만 한 가지 커뮤니티엔 유일한 지혜자인 기억 보유자가 있다. 기억 보유자는 선택받는 사람으로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잃어버리고 잊힌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전달받은 보유자들은 커뮤니티의 지혜자가 되어 조언을 할 수 있다. 기억 보유자는 새로 나타난 기억 보유자에게 세상의 모든 '기억'을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커뮤니티의 독이 될 수도 있는 무모한 직책이다. 모든 감정, 세상에 대한 모든 아름다움을 전달받은 보유자가 과연 새장 속처럼 답답한 커뮤니티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커뮤니티 안에서 안전하게 자랐다면 몰랐을 전쟁, 고통, 차별, 가난, 핍박, 아픔 등도 함께 전달받아야 한다.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해서 기억 전달을 실패할 수도 있다. 이 기억 보유자와 기억전달자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 축이다.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로 선택받아 경계선의 끝에 있는 기억전달자의 집에서 수련을 해나간다. 조너스가 새로운 감정들에 눈을 뜰 때마다 영화는 점점 컬러풀해진다. 처음 만난 색상은 레드. 레드가 이렇게나 황홀한 색상일 수가 있다니. 기억을 전달하는 장면들은 스냅샷처럼 삽입되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눈밭에서 썰매를 타거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거나 시끌벅적한 웨딩 현장을 가거나 아이의 웃음소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따뜻한 키스. 물론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전쟁의 포화 속으로 향했을 때 조너스는 크게 충격받아 뛰쳐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이란 양면의 동전과도 같아서 어느 한쪽만으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조너스는 어린 시절 친구 피오나에게 향하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자신의 세상에게 '감정'을 전달하려는 진정한 기억전달자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려 큰 용기를 낸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경계선 끝을 지나 외부권으로 나아가는 것. 세상의 기억을 갖고 있는 기억 보유자가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면 커뮤니티의 보호막은 걷히고 감정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사실 다음 세대의 기억 보유자가 될 어린아이를 안고 혈혈단신으로 끝없는 사막과 눈밭 속을 헤매는 모습은 현실감이 아주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초반의 신선한 감은 사라졌지만 소재 자체의 새로움은 남았다.
특히 마지막 엔딩도 좋았다. 기어코 경계선을 넘어 간 조너스가 향한 마지막 곳은 전달받은 기억 속에서 봤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던 오두막집이었다. 이제 커뮤니티엔 '감정'이 들어왔고 어쩌면 세상은 다시 전쟁과도 같아질지도 모른다. 다시 오염되고 차이가 생겨나 차별도 하겠고 누군가는 벙커를 짓고 누군가는 다시 폭발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 경계선을 부순 조너스를 욕하는 자들도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이 죽일 놈의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다. 경험할수록 지혜는 쌓이고 실수는 적어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전달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래서 무의 세계 커뮤니티에도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기억전달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 물론 아는 만큼 고통도 크다. 용두사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영화가 갖는 의미다. 게다가 잘생긴 남녀 주인공은 덤이다.
*PS
이 영화의 한국판 포스터 좀 충격적이다.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생뚱맞게 만들어 놓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