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Oct 16. 2018

25. 펭귄 하이웨이

그것은 열한 살 소년의 몽정기....

*들어가기 전에-

브런치 무비 패스로 다녀왔다. 기대감을 갖고 봤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무비 패스로 본 게 아니었다면 내 인생 영화 매거진에 올릴 영화는 아니란 거다. 해서, 쓰긴 써야 하지만 무비 패스로 다녀왔다고 좋은 말만 써줄 순 없다. 이 영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다. 마음에 안들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다. 펭귄 하이웨이를 지극히 감동적으로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패스하시길-




이 영화는 단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원래 주절주절한 인간인지라 요약하거나 한줄평을 못쓰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할 수 있다.

열한 살 소년의 몽정기다.


나는 여자이므로 남자가 소년이 되어 특정 시기를 거쳐가는 '사춘기'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 시기에 성에 어떻게 눈을 뜨는지 몽정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그 시기엔 작은 자극만 가지고도 예민하게 부풀어 오르는 시기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사실 열한 살 정도 되면 몽정을 하고 성에 눈을 뜨는지도 잘 모르겠다. 너무 빠른 감이 없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나도 열두 살에 성에 눈을 떴고 이차 성징이 나타났었다. 나는 그 당시 굉장히 빠른 편이었는데 지금은 더 빨라졌겠지.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열한 살 소년 아오야마는 평범한 소년이 아니다. 영리하고 모든 것을 노트에 필기해 둘 정도로 철두철미하고 논리적이다. 애어른 같기도 하다. 겉은 아이지만 속은 어른스럽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잘난 것을 안다. 초반 시퀀스는 아오야마가 등교를 준비하며 잘난 척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일본식 애니메이션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잔뜩 들게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다 갑자기 등굣길에 펭귄이 나타난다. 검은색의 뒤뚱뒤뚱한 그 펭귄 말이다. 생뚱맞은 곳에 생뚱맞게 갑자기 튀어나온 펭귄에 아오야마와 친구는 연구를 시작한다. (이 영화 속 아이들은 그렇게 뭘 연구를 한다. 펭귄을 연구하고 물길을 연구하고 바다를 연구한다.... 평범한 열한 살 아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아오야마를 괴롭히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 같다.) 그러다가 아오야마가 짝사랑하는 치과 누나가 콜라 캔으로 펭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펭귄은 누나가 만들 수 있고 그 펭귄들은 먹지 않아도 펭귄 에너지로 살 수 있으며 그 에너지라는 것은 어쩌면 숲 속에 거대하게 떠있는 물방울 즉 '바다'라 명명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펭귄이 나왔을 적만 해도 나는 뭔가 커다란 비밀이 있고 그걸 일본 특유의 판타지로 잘 풀어내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어쩌면 펭귄은 맥거핀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사실 펭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아오야마와 치과 누나의 사랑이야기다. 아오야마는 기승전 누나의 '가슴'이야기를 줄기차게도 한다. 처음 몇 번은 그래, 그 나이 때 빠른 소년들은 여자의 가슴에 유난히 집착하고 호기심을 보일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와 빵가게 앞에서 동그란 케이크를 보며 가슴 케이크라고 하질 않나, 나중에 누나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자 가슴이 줄어든다며 헛소리를 지껄일 때는 아이고 뭐고 간에 나였으면 머리통 한 대 두들겨 패주고 싶더라.


그때부터 나는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끝나길 바랐지. 왜냐면 영화 속 펭귄 하이웨이는 결국 펭귄이 가는 길이 중요한 게 전혀 아니었거든. 어른인 나도 어려울 수 있는 세계의 끝 이야기를 아빠와 나눌 때는 저 '로봇'같은 아빠는 대체 자기 아들한테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세계의 끝은 마치 주머니와 같아서 뒤집으면 밖은 안으로 향하고 안은 밖으로 향한다는 결국 세계의 끝은 내 안에 있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허세에 찌든 대화를 어린 아들과 잘도 하고 있더라. 물론 아오야마는 누나와의 절절한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사라져 간 펭귄 하이웨이를 따라서 세계의 끝을 향해 살기로 결심했지. 다시 한번 누나와 만나길 바라면서... (아마 아오야마는 중학교만 가도 새로운 연상의 여자에게 눈이 돌아갈 것이고 고등학교만 가도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것이고.. 대학교만 가도;;; 그만하자.-_-)


숲 속에 떠있는 미지의 커다란 물방울은 나중에 누나가 만들어 낸 펭귄들에 의해서 마을 안으로 터져 나간다. 이건 내가 너무 때가 탄 나이라서 그런지... 아오야마의 줄기찬 가슴 집착증 때문인지... 영화 자체가 아오야마의 꿈속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의 가슴에 대해 꿈을 꾸다가 몽정을 하고 마는 꿈 말이다. 물방울 바다가 터져나가는 것 자체도 소년의 몽정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누나가 사라지기 전에 '기어코' 아오야마를 가슴에 안아준다. (감동적인 장면인데 이미 한 소년의 몽정기로 보고 있어서 웃음이 났어;;;)


자, 그러니 귀여운 펭귄의 모험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에겐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다. 펭귄은 맥거핀이야... 펭귄의 비밀 따윈 없어. 다만 소년 시절의 '나'를 만나보고 싶거나 그래서 그 소년 아오야마를 귀엽게 볼 수 있는 사람에겐 추천한다. 누나는 아오야마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내내 '소년'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남자들의 특정 시기를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소년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 말이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어리지도 않고 이성에 눈을 뜨는 그 시기. 남자들에겐 한 번쯤 누나를 사랑했을 법한 그 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 같은 영화였다. (문득 남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다.)


물론 가슴을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지만 영화는 일본식 가족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홍보해 놓고.............. 기승전'가슴'은 너무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토토로' 같은 영화를 생각했다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대교체는 확실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최고는 여전히 미야자키 하야오다.




* 음악은 좋았다. 그림체도 예뻤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