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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Feb 14. 2018

분노의 기술.

더 이상 스트리트파이터가 되지 말아야지

어려서 나는, 늘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곧 그 '착하다'라는 소리가 자기주장이 없고 만만하다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다. 대학교 때까지 줄곧 그랬다. "넌 참 착해" "얘길 잘 들어줘서 참 고마워"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내가 그래서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니 그게 통하지 않았다. 사회는 착한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아니다. 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착한 사람들은 밟아도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의 내 모습 팔 할은 사회에서 얻었다. 습득하여 체화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나는 스트리트 파이터가 되어 있었다. 



출퇴근길 만나는 거리의 불특정 다수들이야말로 나한테는 쓰러뜨려야 할 파이터들이었다. 어깨빵을 하고 모른 척 지나가는 사람들은 애교다. 대체 왜 나가떨어질 만큼 어깨를 부딪혀 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의기양양해서 사라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자들은 체구도 커서 부딪히면 돌덩이 같다. 그 충격으로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부여잡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여자들은 출퇴근길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 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사실이다. 물론 어깨빵을 한 게 남자들만은 아니다. 나는 여자들한테도 많이 당했다. 특히 지옥 같은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은 그 피로도가 몇 배 더 높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남자들에 의한 성추행이나 위협 등을 많이 느껴봤다. 사실이다. 


예전에는 가슴이나 엉덩이를 슬쩍슬쩍 만져대는 인간들도 꽤 있었고 대놓고 욕을 하는 인간도 봤다. 사람들이 꽉 찬 지하철 입구에서 무턱대고 밀고 들어오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잠깐만요. 제 짐 좀..."이라고 한 마디 했다가 바로 코앞에서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 x 년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이 씨 x, 씨 x, 씨 x..."이라는 대사를 듣게 되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새끼를 들이박고 출근 안 하고 경찰서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맞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아저씨, 제가 뭐라고 했나요. 욕하지 마세요..."라는 소리를 거의 모기만 한 소리로 하며 눈을 떨궈야 했다. 그 참담한 기분은 회사에 가서도 내내 잊히지 않고 더러운 세균처럼 내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 새끼의 머리통을 짓이겨 놓는 그런 상상은 매번 해봐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그렇게 출근을 해서 가는 회사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사장은 나한테 대놓고 "여자는 사무실의 꽃인데 왜 그렇게 찡그리고 일을 해?"라는 소리를 지껄였고 나는 더 찡그리고 일을 했다. 내 주름의 상당 부분은 그때 그 사장 덕분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로 느는 건 욕이고 분노였다. 나만 착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을 볼 때도 착하고 바른 사람들은 딱 질색이었다. 나쁜 남자 취향이 이때 만개했다. 나는 착하다는 소리 대신 까칠하다,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남들이 뒤에서 어떤 소리로 나를 씹던지 솔직히 그 말 듣는 게 나쁘지 않았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욕부터 나가게 되고 그게 이기는 건 줄 알았다. 나는 그저 파이터였다. 참지 못하고 욱하는 나를 가족들은 걱정했다. 왜 저렇게 변했냐고 했다. (나는 지금도 욕을 해대는 트위터 비밀 계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욕 계정이다. 진짜다.) 미술치료를 1년간 받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모습이 나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다 그렇게 산다. 유세 떨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치가 떨렸다. 


사회 탓, 남자 탓, 사람 탓을 했다. 탓탓탓. 

요즘 시대는 분노의 시대다. 저마다 화가 나있다.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많다. 펑 터지고 나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고 또 낳는다. 사실 분노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똥이 더럽다고 똑같이 똥을 싸 댈 필요는 없다. 그러면 나만 같이 더러워진다. 조금 다른 맥락의 책이지만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읽기 시작했다. 다 읽진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혐오 표현에 대한 글이지만 읽다 보면 지난 내 말들을 뒤돌아 보게 된다. 무심코 내뱉은 말들 말이다.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상처 준 장본인이다. 글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1년간 집에서 일을 하며 출퇴근 길의 지옥에서 멀어져서 인지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인지 남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써놓고 보니 무서운 말이지만 죽이고 싶은 사람들 많이 만났다.) 물론 여전히 비밀 계정을 가지고 있고 순간 욱하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다시 착하게 살고 싶다. 바보같이 멍청하게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선하고 바르게 살고 싶다. 너의 분노에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 옳지 않은 일에는 소리를 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겠다. 나의 말은 이러하지만 너의 말도 경청하겠다. 그것이 분노의 기술이다. 변하지 않는 꼰대가 될까 봐 걱정이다. 옳지 않은 분노란 자신은 변하지 않고 남들 탓만 하며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나는 유연해지고 싶다.


끝도 없는 분노가 몸을 감쌀 때면 잠시 호흡을 해보자.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삶이란 하나의 호흡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지금도 밤에 잠들기 전 안좋은 생각이 들면 크게 호흡을 한다. 캄캄한 방안에서 호흡을 하면 먼 우주와 연결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장면을 보자. 



♬ BGM : Khruangbin 'White Gloves'

     She was a queen
     She had a house
     She was a fighter
     She was a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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