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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21. 2018

빨래방,

안과 밖의 세계에서... 

계속, 계속...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목구멍까지 가득 차올랐는데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쓰다 말고 쓰다 말고 차곡차곡 서랍 속에 넣어 둔 글이 열 개나 된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언제나 끝을 맺지 못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살아온 날들이 결말이 없는 시작만 해놓은 내 글들 같다. 


올 겨울 동파 때문에 세탁기를 쓸 수가 없어 빨래방에 처음 가봤다. 대형 마트의 빨래방에 빨래를 넣어두고 장을 보고 커피를 마셨다. 남자 한 분이 이어폰을 꽂은 채 세탁기 앞에 앉아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리는데도 앉아 있어서 대체 뭘 듣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돈은 들지만 그 간편함 때문에 오늘도 겨울 옷과 이불을 들고 빨래방을 찾았다. 찾아보니 동네 곳곳에 빨래방이 많았다. 3월 중순인데 눈이 내렸다가 다시 비가 내렸다가 다시 눈이 내렸다. 평일인 데다가 날씨가 궂어서 빨래방에는 사람이 없다. 주인 없는 빨래들만 세탁기 안에 들어가 있다. 이 빨래 주인은 내가 갈 때까지 오지 않았다. 빨래방은 모든 게 500원 동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제도, 봉투도 안마의자도, 심지어 에어컨도 500원 몇 개로 작동된다. 세탁이 다 될 때까지 좋아하는 짜이를 마시고 건조가 다 될 때까지 안마 의자에서 안마를 받았다. 짜이를 마시면서 안마를 받으면서 눈을 보았다. 눈이 계속 계속 내려서 보기 좋았다. 커다란 통 창문으로 눈이 내리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우리 동네에는 집 값이 싼 대신 비행기가 지나간다. 밤이고 낮이고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이미 익숙해졌는데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빨래방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궁금해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섞여서 함께 걷고 있을 땐 궁금하지 않던 질문이다. 밖으로 나와야 질문이 많아진다. 질문은 언제나 그렇다. 그 속에 있을 땐 엄두가 안나는 법이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하는 데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는 언제나 밖으로 나와야 했고, 이젠 다시 들어갈 수 없다. 밖의 사람은 늘 밖의 사람이다. 그게 룰이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는 일은 가장 고독한 일이다. 평소라면 타인에게 보일 일 없는 세탁물을 가지고 와 타인 속에 섞여 빨래를 하는 일은 안으로 향하는 동시에 밖으로 향하는 일이다. 그게 룰이다. 




♬BGM : 이적 '빨래'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괜찮아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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