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깊은 바다 한점
1993년 개봉작인 뤽 베송의 '그랑블루'
이때의 장 마크 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폐업한 비디오 가게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이 비디오테이프를 득템 했던 기억이 난다. 무더기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비디오테이프 속에서 사람들 제치고 '그랑블루' 찾겠다고 애썼던 기억. ㅎㅎ 테이프가 닳도록 보고 또 보고 장 마크 바의 바다를 닮은 눈에 또 한번 반하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장 마크 바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와 돌고래가 나온다는 거다.
수영을 못하는데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하고 많은 동물들 중에서 코끼리와 고래를 좋아한다. 이 모든 요소를 충족하는 이 영화는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이미 나에겐 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되는 힐링 영화다. 스토리도 꽤나 인상적인데 나는 이 영화의 엔딩을 특히나 좋아한다.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는 인상적인 몇 장면들을 이야기해야겠다.
어린 시절 잠수부였던 아버지를 바다에서 사고로 잃고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자크는 늘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바다가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던 이 장면은 숨 막혔지만 아름다웠다.
어린 시절 친구인 장 르노(엔조)와 풀장에 빠져 술을 마시던 이 장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둘이 술에 취해 말릴 새도 없이 들어가 바닥에 앉아 술을 마시던 이 모습은 인상 깊다.
엔조와는 친구지만 경쟁상대이기도 하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엔조는 자크를 이길 수 없다. 엔조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무리하게 잠수를 하던 도중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마지막 엔딩 장면.
자크가 사랑하는 연인도 놔두고 고래를 따라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던 장면이다. 영화를 보던 때는 늘 그게 궁금했다. 대체 왜 자크는 사랑하는 연인도 놔둔 채 바닷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것일까.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저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간 자크는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았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 비로소 숨을 쉬기 위해 들어갔을 것이다. 어쩐지 나이가 들어 숨 막힐 때가 많아지고 나니 자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며칠을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봐도 아름답고 푸르른 내 안의 깊은 바다 한점. 그랑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