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마다 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분명히 어제는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모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말차 플랫화이트도 마셨다. 말차 플랫화이트 때문이었을까. 밤이 되니까 몸이 또 말을 안 듣는다. 분명히 약을 먹었는데도 진이 빠지고 가슴이 둥둥.... 누워봐도 잠이 안 온다. 이럴 때는 ASMR도 별반 소용이 없다. 앉아 있기도 누워 있기도 괴롭다. 예전에 증상이 심해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을 때 내가 한 일은 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처음 써본 유서였는데 나한테는 진정의 효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눈물이 펑펑 나다가 메모지 열 장에 글을 써 내려가면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느낀 감정, 남겨진 가족들에게 하는 당부의 말들,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할 일들까지... 모두 다 쏟아 내고 나니 기분이 평온해졌다. 물론 나는 그날 밤 죽지 않았다. 멀쩡하게 다시 일어나 갈겨쓴 유서를 찢어 버릴까 하다가 버리지 않고 책꽂이 한 곳에 두었다. 다시 읽어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런 적이 한번 더 있었다.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위층에 살던 가족은 생활 소음이 심한 편이었다. 아이들이 우다다 뛰어다니는 건 참을 수 있었는데 새벽이 다 되도록 내 방 위에서 나는 소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잠도 안 자고 뭐하길래 저렇게 끌고 쿵쿵거리는 소음을 낼 수 있는지 미칠 지경이었다. 몇 번이고 뛰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다가 너무 참기 힘들어져서 편지를 썼다. 말 그대로 위층집에 보내는 편지였다. 전에 살던 빌라에서 새벽에 위층이 싸우는 소리에 못 참고 올라갔다가 큰일 날뻔한 이후로 웬만하면 면대면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서로 감정이 격해졌을 때 마주쳐 봐야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아파트로 이사 온 후론 경비실을 통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되도록 참았다. 어쨌든 격한 마음을 억누르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다. 욕을 쓴 것도 따져 물은 것도 아니고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오히려 절절하게 읍소하는 편지였다. 편지를 쓸 때만 해도 내일 아침 당장 우편함에 넣어 둘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그런 기분은 사라졌다. 다시 소음이 심해질 때면 나는 그 편지를 읽었다. 곧 그 집은 이사 나갔다. 그 편지는 아직도 내 책꽂이에 놓여 있다.
감정을 추스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한테 가장 좋은 건 역시 글쓰기였다. 이럴 때 글쓰기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타자를 쳐선 안된다. 꼭 연필이나 펜으로 자신의 손으로 눌러써야 한다. 직접 꾹꾹 눌러쓰면서 내 안의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감정이란 변덕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받아들이되 내 몸을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 사진 출처 : photo by Thư A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