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Jun 18. 2019

먼지가 되어

일 년에 몇 번씩은 화병에 물을 받아 꽃을 꽂아 둔다. 꽃시장에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일주일 정도 꽂아두다가 생을 다하기도 하고 어떤 꽃은 말려서 드라이플라워로 방 이곳저곳에 놓아뒀다. 이 취미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거다. 특히 작약꽃을 좋아하는 데 물꽂이 해두면 순식간에 커다란 꽃망울이 활짝 피어오른다. 예쁘기도 엄청 예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근사해서 한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어쨌든 이 시간에 잠도 안 자고 드라이플라워 해둔 병을 여기저기 옮기다가 키 낮은 서랍장 위에 세워둔 액자가 뒤로 넘어가 버렸다. 낑낑대며 서랍장을 끌어내어 간신히 액자를 꺼냈다. 잠깐 사이 액자 위에는 먼지가 잔뜩 묻었다. 물티슈로 닦아내는 김에 서랍장 뒤를 보니 먼지가 어마어마하다. 이런 젠장. 그렇게 청소하기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이고 쓸고 닦았건만 집안 먼지가 죄다 가구 뒤로 숨어버렸던가 보다.


문득 손이 닿지 않는 가구나 전자 제품 뒤쪽에는 얼마나 많은 먼지가 뭉쳐져서 돌아다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광내고 닦아내 봤자 내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는 이렇겠구나. 그게 마음도 마찬가지겠지 싶어서 이 밤에 서랍장 뒤 먼지를 닦아내면서 씁쓸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가 되면 가구를 재배치하고 쌓인 먼지도 쓸어내는 거겠지.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먼지가 쌓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척 방치해두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게 먼지인지 벽지 인지도 모르게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움직일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어째야 하나.


늦게라도 한 걸음씩은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에 먼지가 터불터불 쌓였다. 고가구처럼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붙박여서 시간만 축내고 있는 것 같다.


서랍장 하나 움직이고 괜히 더워져서 선풍기를 돌린다.


-사진 출처 : photo by Kunj Parekh

매거진의 이전글 귀여운 게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