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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19. 2019

해피버스데이

새벽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비가 쏟아졌다. 잠든 지 세 시간 만에 잠에서 깼다. 새벽 세시에 잠이 들었건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잠이 든 것도 아닌 상태에서 뭉기적 거렸다. 엄마가 일어나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소리를 들었다. 소고기 미역국과 잡채. 오늘은 내 생일이다. 이불속에서 손만 꺼내어 핸드폰을 켜들었다. 포털 사이트만 접속해도 내 생일을 알 수 있다. 보내온 메일에도 생일 축하 메일이 잔뜩이다. 이렇게 차가운 생일 축하라니. 이렇게 다 알려주니 생일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없다. 핸드폰과 컴퓨터를 멀리 할 수만 있다면.


오늘 역시 집 밖에도 못 나가고 일하고 공부했다. 하루 종일 비는 오락가락했고 날은 선선했지만 공기 중에 습기가 가득하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싫다. 기분도 덩달아 다운될뿐더러 천둥과 번개라도 치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불안하다. 소리에 민감해서 고층 아파트에 이사 온 후론 바람 많이 부는 날도 싫다. 내 방 창문 쪽에 바람이 갇혀서 돌아나가는 소리가 창틀이 덜덜 거릴정도다. 우리 집 식구 중 나만 그러는 터라 무딘 엄마와 동생은 쿨쿨 잠만 잘 잔다. 이 정도면 유전학적으로도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우리 집 DNA에 이런 사람이 없다. 난 어디서 온 걸까.


태어난 날 '난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생각하며 일어나 엄마가 만들어 놓고 나간 미역국과 잡채를 먹었다. 친구들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언제 만날지 모를 약속을 잡았다. 점심시간엔 밀린 '슈퍼밴드'를 봤다. 이찬솔이 부른 'still fighting it'을 듣다가 무방비 상태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가사가 왜 이래. 날 닮아서 미안하다니. 생일날 왜 이 노래를 들어가지고. 하필 잡채를 먹다가 봐서 목구멍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엉엉 울었다. 가지가지한다.



생일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지나갔다. 아이들이 느끼는 설렘은 없지만 나를 위해서 꽃을 주문했다. 내일이면 어여쁜 생화가 도착할 테고 나한테는 큰 위로가 되어 줄 거다. 동생이 퇴근길에 생뚱맞은 케이크로 나를 웃겨줬다. 지금은 이대로 좋구나. 촛불을 끄면서 기도했다.


케이크 실화냐. 심지어 공룡에 불도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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