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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21. 2019

독하고 순결한 사랑의 향기

트리트먼트 팩이라고 쓰여 있길래 당연히 헤어팩인 줄 알고 머리 감을 때 썼던 팩은 사실은 오일 성분이 들어있던 피부팩이었다. 오일 성분이 있어 머리가 코팅된 것처럼 뻣뻣해지기만 하지 도무지 닦이지 않아서 찾아보니 맙소사. 비싼 영양팩을 머리에 들이부었다. 내 머리카락이 호강했구나.


생일을 맞아 배달시켰던 노란 백합과 헬리크리섬이 도착했다. 헬리크리섬은 꽃 모양이 전부 다 다르고 인상파 화가가 그린듯한 꽃이다. 특이한 점은 생화인데도 움직일 때마다 종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지나다닐 때마다 가만히 손으로 만져본다. 헬리크리섬의 꽃말이 '슬픔은 없다'라니. 나한테 딱 맞는구나.


문제는 백합이다. 좋아하는 꽃은 아니지만 나한테는 추억이 있는 꽃이다. 하얀 백합만 있는 줄 알았다가 노란 백합이 있어 주문했는데 역시 예쁘다. 물꽂이를 해두니 커다란 노란 꽃이 활짝 만개했다. 문제는 향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다. 열 송이 정도의 백합향이 온 집안에 진동한다. 백합꽃 향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향이라는 것이 독한 편이다. 오죽하면 방안 가득 백합을 놔두고 자면 죽는다는 소리까지 나올까...


꽃향기라고 놔두기에는 평수가 작은 우리 집에는 코를 쏘는 향이 감돈다. 나는 견딜 만 한데... 동생이 난리가 났다. 해서 백합꽃은 거실에서 내 방으로 쫓겨났다. 내 방은 거실보다 더 작은데 책상 앞에서 맡으려니 내 코도 시큰거린다. 하하 핫. 결국 백합은 내 방에서도 견뎌내지 못하고 베란다로 쫓겨났다. 미안 내일 아침에 다시 데려다 놓을게. 아무래도 백합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마지막일 듯하다. 집 평수가 넓거나 꽃 향기를 견딜 수 있다면 선물해줘야 할 꽃 같다. 그때 그 아이는 받았던 백합 꽃다발을 어쨌을까. 이렇게 독한 꽃인 줄 몰랐는데...

백합의 꽃말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란다. 아니 순결하고 변함없는 사랑의 향이 이렇게 독하다니!! 역시 변함없이 오래가려면 독해야 한다.


-후기

백합은 떨어지는 것도 무섭다. 꽃이 천천히 시들거나 하나둘씩 떨어지는 게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꽃 한 송이가 뭉텅이로 후드득 떨어져 있었다. 꽃줄기만 하나씩 오롯이 남아있는데... 아, 과연 백합은 순결하고 고결해서 지는 것도 순식간에 져버리는구나. 성격 참 지랄 맞는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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