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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Feb 24. 2020

세뇌, 만약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신천지와 다단계의 수법은 같다

결국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 우리 동네라고 무사하지 못했다. 휴가를 낸 동생과 동네 맥도널드에서 맥모닝 세트를 먹고 있을 때 동생의 직장 동료가 우리 동네 확진자 소식을 알려줬다. 마트에 가니 마스크는 물론이고 장갑을 끼고 카트를 미는 이들도 보였다.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는 나에 비해 동생은 답답하다는 이유로 자차로 출퇴근한다는 이유로 마스크 착용에 소홀했으나 그날 마트에서 한 직원에게 세 번에 걸쳐 마스크 착용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렇다. 이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미착용 그 자체만으로 민폐가 되었다.


감염자 확산 속도가 너무 빠르다. 모두 신천지 신도에 의한 확산이었다. 주말이 될수록 기사와 뉴스는 코로나 19에 대한 소식과 지역사회 확진자 소식으로 뒤덮였다. 모두 확진자 이동경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고 신도수가 100여 명 미만이다. 서로 얼굴을 빤히 알고 있어 신천지 교인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였지만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위치였고 나는 면역력이 좋지 않아 고민하다가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 무서운 바이러스가 신천지에 의해 확산되었다는 사실이 무섭다. 어떤 신념에 세뇌당하여 눈에 뵈는 것 없어진 상태가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왜냐면 그들은 정상적인 인지 상태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조정하는 자들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는 자신한다. '난 절대 아냐', '바보 아냐? 그런 걸 믿는 게?' 하지만 순식간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그들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결코 이상하지도 덜떨어지지도 찌질하지도 찐따처럼 보이지 않는다. 멀쩡하다 못해 인상 좋고 사람 좋으며 유능하고 말도 잘하고 심지어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대다수다. 교인이지만 이단에 대해서 무지했던 참에 신천지에 대한 영상을 접하고 나서 그들의 전도 수법이 얼마나 악랄하고 교묘한지 알게 되었다.


더불어서 오래전 내가 내 발로 들어갔었던 압구정동 다단계가 생각났다. 2년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안되어 놀고 있을 때 중학교 동창이었던 승혜한테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의 연락이었고 하얀 얼굴에 조곤조곤 말하는 승혜를 나는 좋아했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아르바이트 자리도 있다며 불러낸 자리였다. 모처럼 만났으니 하룻밤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고 나는 집에다가 허락도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치밀한 계획이었다. 심지어 그날 밤 승혜네 집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나를 불러낸 거였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준다며 데려간 곳은 압구정동이었고 모델 뺨치는 잘생기고 훤칠한 슈트 빨 오지는 젊은 남녀가 가득했다. 위압감과 동시에 마치 화려한 세계로 초대받은 느낌에 황홀해졌다. 바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조를 짜듯 방 하나에 원형 테이블에 4~5명씩 앉히고 뒤에는 데려온 친구가 서있었다. 방 하나에 매니저라는 사람들이 들어와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사업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돈이 그냥 굴러들어 오는 거였다. 중간중간 뒤에 서있던 승혜가 내 어깨를 쓰다듬거나 마주 보고 웃거나 믿음을 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 다들 많아봐야 20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전무했고 거의 다 대학생들이었다. 들어와서 설명해주는 매니저들의 말발은 상상초월이어서 정말 듣는 대로 돈을 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데 이번엔 함께 모여 거대한 홀에서 2차 간증 시간이 있다. 다단계 등급이 나뉘어 에멜랄드니 사파이어니 하는 등급이 있고 최고 등급은 다이아몬드다. 마스터들을 소개할 때마다 가운데로 걸어 들어왔고 모두 레드카펫을 밟는 스타에게 하듯 박수를 친다. 마스터들은 딱 봐도 성공한 커리어 우먼, 커리어 맨들 같다. 커다란 칠판에다가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데 그 몇 시간 동안 듣는 사람들 모두 매혹되어 울고 웃게 된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불행했던 가정사까지. 그 모든 역경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스토리를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들어 들려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맨 앞에 앉아 펑펑 울었다. 감동받아서. 처음엔 듣다가 나올 생각이었는데 그랬다. 그렇게 무서운 거다. 그들의 모든 교육의 끝은 학교를 그만두라는 거였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 절대로 말하지 말고 성공해서 다 갚으면 된다고 했다. 끝나고 몇 명씩 모여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노래방을 갔다. 모두 각본이었다. 친밀도를 높이고 마음을 열게 하는 거였다. 모두 내 말을 경청해주고 이해한다는 눈빛과 자신들의 얘기도 들려주니 그 짧은 시간 안에 정말 절친이 된다.


나는 미리 얘기한 대로 승혜네 집에서 잤다. 승혜는 끝없이 성공과 확신에 대해 얘기해줬다. 자신의 비전이 뭔지. 이곳에서 이뤄질 성공에 대해서 승혜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해줬다. 그 눈빛이 너무 진실해서 나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승혜는 정말 믿고 있었다.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백팩을 메고 다니던 승혜는 압구정 명품 쇼윈도에 걸린 옷을 보며 말했었다. 여기서 꼭 성공해서 저런 옷을 입고 어떤 차를 끌면서 다닐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그 단호한 말 앞에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 되자 이번엔 그곳에서 파는 제품이라며 몇 명씩 앞으로 나와 얼굴에 마사지와 마스크 팩을 해줬다. 팔기 전에 써보라는 거였다. 그다음이 중요한데 자신의 인맥리스트를 적게 한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으니 집에다가 얘기하지 말고 현재 자신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적으라고 한다. 금방 갚을 수 있다. 이건 일종의 투자라고 했다. 승혜도 그때 당시 500백만 원 이상을 아르바이트하던 뷔페 사장한테 빌렸단다. 나같이 아싸가 그런 사람이 있을 턱이 만무했다. 너무 어려워하니 그들은 옆에서 나를 북돋아 주고 할 수 있다고 세뇌했다. 새로 온 신입은 총 3명의 팀이 되어 움직인다. 신입과 신입을 데려온 사람 그리고 그 윗 사수. 딱 다단계의 시스템이다. 승혜와 사수는 한 팀이 되어 나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말할지 코치를 해주고 전화하는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끝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해서 돈을 꾸면서까지 이걸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머릿속에선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에선 '만약에 정말 승혜 말이 맞다면? 정말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좋은 옷을 입고 멋진 그들이 모두 다 거짓말일까? 그렇게 울면서 얘기했는데? 만약에 한 명이라도 성공한 사람이 없다면 이렇게 유지될 수 있을까? 만약에 하나 그들의 말이 맞다면?'이라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모든 수법이 신천지와 똑같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만약에 하나'로 세뇌시키는 것. 만약에 하나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는 건데 내가 복을 걷어차는 거라면... 만약에 하나 내가 믿어서 우리 가정을 모두 구원시킬 수 있는데 내가 걷어차는 거라면... 이런 만약에 하나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가지 않은 길에 후회와 미련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됐냐고? 동생한테 고민을 털어놨고 당시 직장 생활을 하던 동생은 엄마에게 알렸다. 나는 외출 금지를 당했고 승혜는 사수와 함께 전화를 끝없이 해왔다. 동생이 대신 받아서 쌍욕을 하고 나서야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때 당시 동생한테 내가 했던 말은 이거였다. "그러다가 승혜만 성공해서 좋은 차 타고 다니면 어떻게 해!!!"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잠시 미친 거 아니었나 싶은데 세뇌라는 게 그런 거다. 근사한 꿈의 청사진을 자신 앞에 펼쳐놓고 모든 분위기가 그렇게 몰아갈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만약에 하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 후 한참 시간이 흘러 승혜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하철 맞은편에서였다. 승혜는 나를 보지 못했는데 나는 단박에 알아봤다. 왜냐면 청바지와 남방 그리고 백팩을 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는데 승혜는 원하던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씁쓸하고 안타까웠는데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일에는 공짜란 없다. 가족과 자신을 둘러싼 사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건 뭐가 됐든 제대로 된 것은 아니란 거다.

 

"승혜야 잘 지내니? 넌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까? 너의 그 꿈은 어떻게 이뤄졌니? 나는 네가 원망스러워. 성공이라는 미혹에 친구를 잃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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