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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30. 2020

사회적 거리두기 하십니까?

인생은 고스톱이 아니야

한강공원에 가득 찬 시민들의 기사를 읽고 어떤 간호사는 목을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 간호사의 친구가 SNS를 올렸다. 얼굴 여기저기 밴드를 붙이고 뼈를 갈아 일하는 의료진들한테 못할 짓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같이 공감하고 울분을 토했다. 대체 이런 시국에 한강엔 왜 나가 있어? 미친 거 아냐? 


당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재난문자가 친한 친구한테 오는 카톡보다 더 많이 오고 있다. 정부는 4월 5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시행하며 외출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아이들 개학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지고 있다. 내가 아는 사회적 거리두기란, 직장인은 출퇴근 외에 약속, 외출을 자제하고 마트나 약국을 비롯해 꼭 가야 할 곳엔 마스크를 쓰고 나가며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원래 생활 패턴 자체가 집콕이라 별로 바뀔 것은 없었지만 늘 하던 카페에 가서 앉아있거나 마음이 동할 때면 언제든 나가던 시내 나들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매일이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 마음의 우울을 덜어내기 위해 날마다 한 시간씩 뒷산 산책로에 올라가는 게 내 유일한 외출이다. 최근에는 미친 듯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달고나 커피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다가 맥심 커피믹스에서 24박스 커피믹스를 보내줘서 당분간 커피 걱정 없어졌다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랄까. 


그런데 사람이 다 나같이 생각하지는 않나 보다. 카페에 사람들이 많다. 테이크 아웃하러 두어 번 간 스타벅스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누구는 자영업자들도 먹고 살아야 한단다. 동네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소비해야한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뿐인가. SNS는 더 심각하다. 내 지인들을 비롯해서 알려진 연예인들, 셀럽들, 작가들... 모두 카페엔 잘만 가서 앉아있는다. 일상이 멈춰서 우울했는데 일상을 공유해줘서 고맙단다. 아니죠. 일상은 모두가 멈추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누구는 스톱, 누구는 고! 인가요? 인생이 고스톱인가. 나는 이런 이중 잣대가 너무 괴롭다. 누가 정답을 알려줬으면 싶다. 아닌 척 댓글도 달고 좋아요도 해봤는데 자꾸 나만 바보 된 거 같은 기분이다. 


지난 주말 이모는 이모부와 차로 벚꽃 구경을 갔단다. 하. 하. 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어 물어봤더니 자차로 이동하면 괜찮을 줄 알았단다. 막아놔서 그냥 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제야 나는 다 나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폐쇄된 실내가 아니면 넓은 하늘 아래선 마스크만 껴도 괜찮은 줄 알았겠지. 나는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런 생각들이 모여 한강공원에 앉아 들뜬 마음으로 나들이를 즐기게 만들었을 거다. 


나 혼자만 자꾸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뉴스를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일어나면 포털 기사부터 살펴보는 내가 밉다. 어느 것 하나 즐거운 기사가 없는데 왜 매번 살펴보고 힘들어하는 걸까. 


얼마 전 확진자 중에 다른 지역에 살면서 우리 동네에 거주하는 해외 입국자 2명이 있었다. 맘 커뮤니티에는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불평을 늘어놨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지역에 살면서 해외에서 돌아와 우리 동네로 온 건 너무 속 보이는 짓 아닌가. 하필 이때 해외에 다녀온 건 무슨 심보일까. 취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사가 났는데 학생들을 인솔해서 시험을 보러 유럽을 다녀온 선생님이었다. 유럽에 확진자가 늘면서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단단히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입구부터 차 2대로 나눠 타고 007 작전처럼 함께 모여 자가 격리할 곳으로 학생 중 한 명의 친인척 빈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게 하필 우리 동네였던 거지. 돌아와서도 철저하게 나가지 않고 관리해서 선생님을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음성 판명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모두 그 선생님을 칭찬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얼마 전까지 욕하던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사정이 있다. 그렇게 행동했을 법한 이유 말이다. 난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내 위주로만 보고 느끼니까.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지난 한 달간은 무던히도 그런 내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썼던 순간들이었다. 


제주도에 가서 1억 3천만 원을 손해배상하게 생긴 강남 모녀도 사정은 있었겠지. 그러니 강남구청장이 직접 나와서 선의의 피해자 운운하며 감싸줬겠지. 강남구청장은 한 사람의 강남 시민조차도 잘 챙기시는 냥반인가 보다. 안그래?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딨어. 우리 이모도 사정은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부터 나가 재봉일을 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유일한 낙이 매주마다 가던 등산과 자전거였는데 그걸 못하고 집에만 계시다가 정말 단 하루 그렇게 나간거였다. 그나마도 막아놔서 꽃구경도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들어왔다고 하니..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누군가는 강남 혐오증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고 하던데 강남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일부 강남에 사는 자들의 계급의식에서 나오는 우월주의를 혐오하는 것이다. 하와이를 가려다가 못 가고 속이 상해서 제주도를 갔을 뿐이다. 자신들도 그럴 줄 몰랐다.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들도 선의의 피해자다. 그래서 그런 말도 나올 수 있었을 거다. 


일상이란 누구는 멈추고 누구는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아야 맞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있잖아. 아무리 비루하고 남루하다 할지라도. 일상을 위해 일상을 잠시 멈춰 달라고 할 땐, 가난하고 직업이 없고 집에만 있는 사람들만 멈추는 게 아니다. 잘 나가고 바쁘고 나는 특별하니까 하와이 대신 제주도를 갈게, 여행 대신 카페에 앉아 있을게,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네이버 블로그에 하루도 빠짐없이 본 영화 리뷰를 올리고 만든 음식을 올리는 게 아니란 말이야. 


*글에서 느껴졌겠지만 화난 마음으로 글을 써버려서 곧 지워버릴 지도 모르겠다. 감정적인 글은 언제나 실수가 많다. 어서 빨리 일상이 회복되고 바이러스가 사라지길 바라지만 한 편으로는 어렵겠단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왜냐면 모두 나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다 해도 저마다 있는 곳에서 적어도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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