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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04. 2020

31. 경계선

모든 것에 대한 경계를 묻다

부국제 때 놓친 영화였다. 그 후로 볼 기회는 많았지만 어쩐 일인지 계속 외면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아직 이 영화를 볼 준비가 안됐던 것 같다. 지금은 됐을까? 잘 모르겠다. 결말에 대한 스포나 중요한 포인트들은 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반전은 없지만 이 영화는 정보 없이 보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난 남들과 달라요


공항에서 세관 직원으로 일하는 티나는 후각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녀가 골라내는 사람들은 백발백중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인 것이다. 특별한 능력과 더불의 그녀의 외모와 타고난 몸의 체형은 인간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녀에게 공항에서 걸린 남자는 면전에다 대놓고 "못생긴 게 재수 없어"라고 말한다. 못생긴 게 재수 없어, 라는 말을 듣고서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녀 스스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티나는 인간과 다른 본성을 '다르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틀리다'로 받아들여 철저하게 숨기고 산다. 외로움 때문에 하등 쓸모도 없는 롤란드라는 남자를 집안에 들이지만 더 외로울 뿐이다. 사람보다는 맨발로 숲을 산책하고 야생 동물과 교감하는 것이 더 좋다.


남들과 다르다면 당신이 더 나은 거예요


어느 날 공항에 보레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분명히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데 나오는 것이 없다. 몸수색을 통해 남자의 몸에 여성의 성기가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자꾸 눈길이 가고 마주치는 보레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티나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외모. 번개를 맞은 듯한 흉터, 곤충을 먹는 습성, 꼬리가 잘린 듯한 꼬리뼈 위쪽의 흉터까지. 모두 똑같다.


롤란드와의 섹스는 거부했지만 보레와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던 종과 성에 대한 전복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기괴하게 보일 테고 누군가에겐 새롭고 강렬한 장면이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당신은 완벽해요

   


그렇다. 보레와 티나는 인간이 아닌 트롤이다. 한 때 많았던 트롤은 인간에 의해 거의 멸종되었다. 지금은 핀란드의 어딘가에 작은 무리가 모여 살고 있다. 티나의 부모는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채 고문받다가 죽었고 인간인 양부모가 그녀를 입양해서 키웠다. 트롤에게 있던 꼬리는 인간에 의해 잘려 나갔다. 그래서 꼬리뼈에 상처가 있다. 보레는 그런 인간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트롤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자신을 못생기고 기형이라고 말하는 티나에게 보레는 말해준다. 당신은 완벽하다고.


얼마 전 읽은 김초엽 작가의 '왜 순례자는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단편이 생각났다. 인간은 자신과 다르게 생긴 것을 참지 못한다. 둘 중에 하나다. 동정하거나 혐오하거나. 티나는 보레를 통해 오랫동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 말이다. 벌거벗은 채 숲 속을 아이처럼 깔깔 거리며 뛰어다니는 보레와 티나의 모습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악마가 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인간이 되고 싶은 거예요?


모든 인간이 똑같을 수 없듯이 모든 트롤이 같지 않다. 인간의 아기를 납치하면서까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보레를 티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인간 속에서 섞여 살아왔던 티나는 모든 인간이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티나가 경찰과 함께 쫓던 소아성애 포르노를 제작하던 인간들이 나온다. 겉모습이 흉측하다는 이유만으로(미의 기준이라는 것조차 인간의 시선일 뿐) 인간에게 혐오를 당하는 트롤과 단지 껍데기가 인간인 이유만으로 입에 담기도 싫은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 중 누가 나은 것일까?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트롤은 괴물일까? 누가 더 인간에 가까운 것일까?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보레를 만나고서야 티나는 누구보다 '나답게' 살아가게 된다. 영화는 110분 동안 강렬한 흡인력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마지막 엔딩까지 완벽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는 물론 모든 것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후기들이 눈에 띄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본 것도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았다. 나는 불쾌하게 볼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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