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가 가지고 있는 순간순간 해맑게 드러나는 순수한 악에 대해서는 이내 섬뜩해지고 만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천진난만한 악은 자라면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철저하게 숨겨진다고 믿는다. 인간의 어두운 내면, 그리고 타고난 악에 대한 이야기를 그래서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타고난 내 본성에 비해 너무 순종적이고 착하다는 낙인을 찍힌 채 자라왔는지도 모르겠다.
악은 이미 많은 영화와 책에서 말하고 있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악은 그 유명한 대사 '4885'를 탄생시킨 '추격자' 지영민이 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절대악은,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이 있다.
물론, 자신의 본성을 잘 포장해서 사회적(?)으로 성공시킨 사이코패스 덱스터도 있긴 하다.
물론 악이 이렇게 타고난 것만 있지는 않다. 악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나치에 충성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결국은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역설에서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다.
악은 자신을 둘러싼 권력에 의해서 생겨나고 무뎌지고 자라난다. 그것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시무시한 악(惡)과 만난다.
굳이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을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가지게 되는 위치와 권력에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도리스 레싱의 <다섯 번째 아이>가 생각 나는 영화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사이코패스라면? 악 그 자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의 시작이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철저하게 케빈을 낳은 엄마 에바(틸다 스윈튼)에 몰입해서 봤다. 에바 입장에서라면 아들이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는 사이코패스가 바로 케빈이다. 아기였을 때부터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더니 끝내 경악할 일을 저지르고 만다.
케빈은 정말 타고난 악이었을까? 아니면 만들어졌을까?
처음엔 타고난 악 그 자체였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스 레싱의 다섯 번째 아이와는 다르다.
케빈은 어쩌면 엄마의 자신에 대한 부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애정을 갈구하는 애(愛)가 악(惡)으로 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에바는 모성이 없는 엄마였다. 모성은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로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어떤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학습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중에도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그런 능력이 결여되기도 한다. 그러니 모든 여자들이 다 똑같을 거라는 생각은 금물. 부모도 준비가 되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말들 중에는 '에이, 결혼하면 아이 낳아야지', '낳으면 다 알아서 크게 되어있어' 따위다.
케빈이 태어난 것도 원하지 않는 임신 때문이었다. 케빈이 태어나기 전 에바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탐험가이자 여행가였다.
케빈이 태어나고 그런 자유로운 삶은 발목을 잡히고 만다. 시끄럽게 울어대기만 하는 케빈을 어쩔 줄 모르고 데려간 곳은 더 시끄러운 공사장 현장. 아마 이 장면이 에바의 모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이리라.
왜 아이와 동물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막히게 알아본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아이들이 나한테 안 오나 보다. (웃으라고 하는 농담이 아니고 사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떠냐면 아이만 보면 '어맛, 너무 예뻐라~'를 연발하며 안아대고 물고 빨고 하는 여자들이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고 할까.)
그러니 케빈도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알아챘을 거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사랑받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관심을 끌어야지.
물론 케빈이 애정결핍으로만 만들어진 괴물은 아니다. 타고난 본성도 있었을 게다. 애정결핍으로 누구나 사이코패스가 된다면 이 세상엔 사이코패스 숫자가 절반은 되었을 거다. 게다가 어린 시절 기억은 누구라도 강렬해서 자신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겪었던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성인이 되어서 미술치료를 1년 이상 받기도 했으니 아이는 쉽게 낳아 쉽게 기르는 것이 아니다.
케빈은 타고난 본성과 엄마의 태도로 인해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엄마 에바가 케빈을 늘 밀어내고 방치한 것은 아니다. 끝없이 다가가고 절망하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끝끝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품어낸다.
케빈의 양육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진 에바와 남편은 이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엄마와 떨어져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경멸과 증오로 바뀌었을까?
케빈은 엄마를 처단하기 위해 아주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엄마에 대한 처벌은 아주 가혹하고 잔인했는데 엄마가 사준 화살로 엄마가 보는 앞에서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
이 장면이 무서운 장면인데 영화 속에선 아름답게 표현됐다. 찾아보려 했지만 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너무 평화로운 집안 풍경에 하얀 커튼이 나풀거리고 햇살이 밝게 비치는 와중에 케빈이 쏜 화살에 맞아 남편과 딸이 죽어있다. 케빈은 오직 엄마만을 살려둔 채 학교로 가서 잔인하게 급우들까지도 살해한다.
집안에 묻은 빨간 페인트칠을 참회하듯 깨끗이 벗겨낸 후 에바는 감옥에 있는 케빈을 찾아간다. 에바는 케빈을 용서했을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엔딩씬까지 너무 훌륭한 영화다.
특히 에바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에바역을 그녀가 아니었다면 누가 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서늘하고 무표정한 에바 그 자체였다.
에즈라 밀러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각진 턱과 눈빛이 매력적인 배우다. 극 중에서도 틸다 스윈튼에 밀리지 않는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이렇게 잘 성장해서 마담 보바리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머리 좀;;;어떻게...
왜 그랬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