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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Dec 19. 2021

실버 스케이트

연말 추천 영화라면, 이 영화를 보세요.

겨울, 눈, 얼음, 로맨스, 역사, 시대물...

이 모든 것이 다 있는 영화가 바로 '실버 스케이트'다.

사실 이 영화 포스터는 전에 스쳐 지나듯 본 적이 있었지만 제목과 포스터 때문에라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보면 영화 포스터와 제목은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임엔 틀림없다.


이 포스터만 봐선 솔직히 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제목이 실버 스케이트라니. 하지만 마치 진흙 속에서 발견한 진주처럼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영화는 러시아 영화다. 사실 러시아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들리는 러시아어가 이토록 매력적인 언어였던가 싶다. 20세기를 앞둔 19세기 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때 러시아는 파리의 에펠탑이 등장하면서 가스등은 전등으로 교체되고 말이 이끄는 마차는 바퀴 달린 차로 바뀌게 되는 격동의 시대였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것도 있는 법. 귀족과 평민의 차이, 여성과 남성의 차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차이가 그것이다. 주인공 마트베이의 아버지는 가스등 불을 밝히는 일을 하고 마트베이는 배달일을 하다가 잘리게 된다. 알리사는 귀족의 딸로 아버지는 고위 관리직의 가부장적인 사람이다. 그에 비해 알리사는 과학자를 꿈꾸며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지만 알리사의 아버지는 가정부를 두어 신부 수업을 받게 하고 신문도 보지 못하게 한다.  여전히 귀족의 딸은 얌전히 신부수업을 받아 좋은 집안과 결혼하는 게 미덕인 시대였다.


당장 생계가 힘들어진 마트베이의 스케이트 실력을 눈여겨본 도둑 알렉스 일당은 그를 끌어들인다. 마트베이는 알렉스 일당과 함께 알리스의 저택에 침입하여 알리스를 처음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과연 이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루고 꿈도 이룰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규칙대로 살지마
네 방식대로 살아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아니?
그럼 네 꿈을 펼치겠다고 약속해줘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는 아니다. 물론 아름다운 19세기 말 러시아를 배경으로 마트베이와 알리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거기엔 몇 겹의 레이어가 겹쳐져 있다.


알리스 역을 맡은 배우가 아름다웠다. 눈의 여왕 같았다.


마트베이와 알리스는 신분의 차이가 있음에도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 알리스는 귀족의 딸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을 가고 싶어도 집안의 가장의 허락이 필요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치 않는 사람과의 정략결혼도 해야만 한다.

반면 가난하지만 성실히 살아온 마트베이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삶은 나아지지 않고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는 병에 걸렸지만 당장 돈이 없어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떳떳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당장의 위태로운 삶 앞에서는 소용없다.


마트베이가 가담하게 되는 알렉스의 도둑 패거리들은 단순한 도둑질을 하기보다는 부르주아들의 주머니만을 골라 털고 다닌다. 두목인 알렉스는 마트베이가 데려온 귀족의 딸 알리스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건넨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믿으며 언젠가는 성공할 거라고 믿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럼 사회 정의를 이루기 위해 다수가 사유재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가요?
다수는 가진 게 없어서 문제가 안 돼요. 문제는 지배 계급이에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케이팅 장면인데 꽁꽁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얼음판에서 알렉스와 마트베이와 경찰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씬이었다. 어느 액션씬 보다 쫄깃하고 스릴 넘쳤다. 스케이트 타는 게 이렇게나 흥미진진 할 수가!우리가 어린 시절 처음 자전거를 아버지한테 배우는 것처럼 러시아도  스케이트는 아버지한테 배우더라. 그래서 그런지 모두 선수급으로  타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화속 이야기인데 실제로도 그런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시대 러시아는 건물도 복식도 아름다워서 마치 배경이 동화 속 세상 같아 보였다. 올해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이런 영화도 나쁘지 않으리라.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동화 같은 배경에 예쁘게 풀어 놓았다.

마트베이와 알리스, 잘 어울렸던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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