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Nov 07. 2022

연애 프로그램 과몰입하기

프리즘오브의 '더 랍스터'를 읽다가

모든 연애 프로그램 마스터이자 과몰입러, 바로 나다.

당연히 요즘 핫한 환승연애2도 봤다. 울고 웃으며 매주 금요일만 기다렸고 마지막 회는 정말 웬만한 드라마 엔딩보다 짜릿해서 심장 멈추는 줄 알았다.


물론 "현규 같은 남자 친구 만났으면 좋겠다"대신 "현규 어머님은 누구시니? 대체 애를 어떻게 저렇게 잘 키운 거야?"라는 말을 할 만큼 내가 나이가 든 건 어쩔 수 없다만, 설레는 건 매 한 가지.


짝, 스트레인저, 나는 솔로, 우리 결혼했어요, 우리 이혼했어요, 돌싱글즈, 하트 시그널, 비밀남녀, 솔로 지옥, 환승 연애, 연애의 맛, 썸바디, 러브 캐처 등등... 안 본 게 거의 없을 지경이다. 다 써놓고 보니 이걸 다 본 나도 놀랍다.



동시대 연애 관찰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지나치게 사실적인 장면보다는 적당히 꾸며진 장면에 보다 쉽게 이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PrismOf'라는 영화잡지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프리즘오브는 매호마다 단 하나의 영화만 선택해서 다양한 시선으로 영화를 재해석해 주는 잡지다.


얼마 전 프리즘오브의 '더 랍스터'편에서 연애 프로그램과 엮어서 쓴 흥미로운 글을 보았다. 같은 옷을 입고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짝'의 세계야말로 짝을 맺지 못하면 동물이 되고 마는 랍스터의 세계관과 똑같다는 요지였다.


이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모든 연애 프로그램의 전제 조건은 그 안에서 짝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는 근사하게 멋진 외모나 사회적인 성공이나 위치 등이 메리트가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성격이 한 몫한다. 그 안에서 남녀들은 오로지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집중한다. 예외는 통하지 않으며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의 짝짓기만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연애 프로그램 안에서 혼자는 실패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환승 연애 시즌1에서의 코코의 엔딩은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다. 혼자일 수 있는 자유. 혼자서도 멋질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연애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짝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요즘은 그야말로 연애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숙식을 하며 마음이 오가는 시그널을 추리하고, 자신의 X와 출연해 누군가의 X와 썸을 타기도 하고, 이별을 앞둔 연인끼리 나와서 다른 커플과 체인지 데이트를 하며 이별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돈과 사랑을 눈앞에 두고 선택해야 하고, 연애하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만한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나와 그 비밀을 밝혔을 때 어떻게 변할지 보고, 심지어 같은 침대에서 말 그대로 잠만 자며 서로를 탐색하거나 반려견이 자신의 짝을 찾아 주기도 하는 등 온갖 트릭과 환경에 일반인 남녀를 놓아두고 관찰하는 예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야말로 굳이 현실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 과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취향대로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과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편리하고 효율적인가.


짝이나 나는 솔로가 너무 날것이고 출연자들이 현실적이라면 하트 시그널이나 환승 연애 등은 동시대의 젊은 남녀들이 과몰입할 수 있을 만한 요소가 많다. 감성이 느껴지는 화면 필터, 무드를 이끌어가는 감각적인 OST,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편집, 현실에서 보기 힘든 외모의 남녀 출연자, 거기에 웬만한 드라마 대사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돌직구의 말들까지. 그래서 연애 프로그램에서 사랑받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솔직하고 자신의 마음을 꾸미지 않고 직진하는 캐릭터들이다.


잡지에선 이런 연애 프로그램들이 무해한 음모라며 교묘하게 우리를 가스 라이팅 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연애 프로그램들을 본다고 당장 집 밖으로 뛰쳐나가 연애할 상대를 물색하거나 결혼할 사람을 찾아 헤매지는 않는다.


우린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모든 연애 프로그램이야말로 현실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고 오로지 연애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트릭을 만들어 둔 거라는 거. 그저 오늘도 쇼핑을 하듯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연애 프로그램 찾아, 출연진에 감정을 이입하며 과몰입할 뿐이다.



자, 내일이 되면 또 다른 과몰입 상대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무해한 음모에 기꺼이 빠져서, 혼자라는 자유를 누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