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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Feb 21. 2023

나도 100원짜리 일하고 싶어. 100만 원이 아니라,

대학 시절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친하게 지냈지만 그 친구가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멀어졌다. 친했던 친구들이 그런 수순으로 멀어지는 건 쓸쓸한 일이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끼어들면 말이 통하는 엄마들만의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더라. 그건 그거고, 학교 때 친구는 친구라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만고 진리 불변의 법칙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렇게 떠내려가는 인연들을 두 손으로 꼭 잡는 법도 없는 사람이다.


서로의 생일 때만이라도 만나던 것이,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로. 코로나가 터지면서는 만나지는 않고 톡으로, 생일 때는 쿠폰이라도 보내던 것이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고 연락 안 한지도 정말 오래되었다. 그런 친구가 톡이나 문자가 아닌 전화가 바로 걸려오는 건 하나밖에 없다.


내 나이대는 부모의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라, 회의 때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고 설마 싶어 회의가 끝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받자마자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는데... 친구는 해맑게 "물어볼 게 있어서!"라고 했다.


나한테 물어볼 것이라는 게 또 뻔하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이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먹고 사니... 예전엔 명함 만들어 달라, 홈페이지 만들어 달라 이런 식의 청들이 꽤 있었다. 멋모를 때는 해줬지만 대부분 그럴 때만 연락하고 다시 연락이 뜸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 줄 건데?"라고 묻기 시작한 후론 그런 청은 뚝 끊겼었다.


갑자기 힘이 빠졌다. 물어볼 게... 뭐지?

친구는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딸아이 하나가 있다.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결혼하면서 아이 육아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뒀고 인테리어 꾸미기가 취미라 집에서 찍어 놓은 인스타 사진들 보면 무슨 잡지에 나오는 사진들 같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서 아이한테 매달려서 함께하는 시간들이 줄었고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는 것, 취업은 힘들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있는 것도 힘들어서 얼마 전부터 사이트에 그래픽 소스를 만들어서 올려놓는다는 것, 그런데 아무도 안 사갈 것 같았는데 조금씩 팔리더란다. 근데 너무 오랜만에 프로그램을 만지다 보니... 결국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이었다.


소스 사이트가 어디냐고 했더니,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다. 모른다고 했더니 너는 같은 일 하면서 이런 유명한 사이트도 모르냐고 타박이다. 대체 얼마에 파냐고 물으니... 100원이란다.

할 말이 없다. 실무 디자이너가100원 소스 파는 곳에 들어가진 않지... 그리고 100원 받고 파는 일도 안 해. 수수료 떼고 나면 대체 얼마를 갖는 거야. 나는 크몽도 싫어한다. 단가 후려치기의 현장. 학생들의 소소한 알바의 현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 프리랜서 일 할 때도 제발 디자이너들 견적 좀 제대로 내지, 스스로 제 살 깎아먹지 말자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노느니 뭐 해... 그냥 소소하게 해 보려고. 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


녹다운. 내가 바라는 게 그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생각나면 소소하게 자아실현을 위해 100원짜리 일을 해도 좋은 거. 출퇴근하면서 이 일 안 하면 밥도 못 먹고사는 100만 원짜리 일 말고, 나도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소소하게 100원짜리 일하고 싶다.


같은 일인데 이렇게 무게가 다를 수가 있나. 나도 가벼워지고 싶다고!!!



*100원, 100만원은 이해를 돕기 위한 단위이지 실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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