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Mar 08. 2023

지속가능한 글쓰기

작가의 서랍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발행하지 못한 글들의 목록이 이렇게나 많다니. 

제목만 써놓은 것도, 중간쯤 쓰다가 만 것도, 다 써놓고도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브런치에는 아직 글의 전체관리 기능이 없어서 삭제하거나 수정하려면 하나하나 열어서 봐야 한다. 


플랫폼에 따라 나의 글쓰기 '자기 검열'은 총 3단계로 이뤄진다.

정말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그때의 날것 그대로의 글을 올리는 트위터가 있다. 트위터는 일정 글이 쌓이면 지우고, 그것도 안 되면 계정을 폭파한다. 하지만 결국 온라인에서 쓴 모든 글은 구글링이든 뭐든 어디에든 남아 평생 떠돌아다니니, 애초에 써선 안 될 글은 올리지 않는다. 일테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 욕망 따위..., 그런 글들은 진짜 개인 일기장을 열어 손으로 꾹꾹 눌러쓰면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쓴 블로그가 있다. 여긴 내가 읽고, 보고, 쓴 모든 취향의 아카이빙이 있어서 떠날 수가 없는 곳이다. 기록용에 가깝기 때문에 맞춤법을 지키거나 글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1년 동안 어디에 가고, 뭘 읽고, 보고 들었는지 빼곡하게 강박적으로 글을 올리는 곳이라 매년 연말마다 정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점점 책을 읽지 않고 스마트폰 노예가 되는 것도, 어떤 유튜브 채널을 보는지, 뭘 먹고살았는지 알 수 있다. 

남은 하나는 브런치다. 브런치 글은 검열을 하는 편이다. 어떤 글을 올려야 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잘 써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믿기지 않겠지만...) 그래서 잘 올리지 않는다. 당연히 시간이 들고 공이 들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작가'라고 불리는 것도, 작가의 서랍이니, 발행이니, 하는 작가의 호칭에 걸맞은 UI를 표방하고 있어서 내가 뭐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마구잡이식 글을 쓸 수 없기도 하다.


요즘 내 머릿속엔 '지속가능한'이란 말이 떠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일, 지속가능한 글쓰기, 지속가능한 유튜브 채널,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삶은 지속가능한 게 아닌데 나는 어째서 강박적으로 지속가능한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나이가 들고 있으니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생긴 것도 있을 터다. 


회사 워크숍에서 버크만 성격 검사 심화를 진행했는데 다른 팀원들의 사교성은 최소 80에서 90대를 달리고 있는데 나만 혼자 9였다.(어쩐지 팀원들 중에 댕댕이들이 많더라니) 하늘과 땅차이라 내가 왜 이들 속에서 이렇게나 힘들고 소외감을 느끼고 진이 빠지는 건지 대번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삶, 나 좀 그만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근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 무시무시한 자본주의의 세계. 시간을 돈으로 주고 사는 세상인 거다. 나의 시간을 아무런 터치도 안 받고 마음대로 유용하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한다. 파이어족이 괜히 생겼겠는가.

게다가 나의 일하는 방식은 빨간, 노란, 파랑, 초록의 4개의 섹션이 모두 너무 짧았다. (버크만에선 유형에 따라 색상으로 구분한다) 이 말은 좋은 말로 포장하면 굉장히 유연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일할 수 있다는 거고, 나쁜 말로 하면 '정체성 혼란'이다. 강사는 이렇게까지 짧은 사람들은 버크만에서도 분석할 수 없는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 일하는 고유함을 터득했을 거라는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내가 회사 생활에 잘 맞는 사람이 아니란 것만 알았을 뿐, 노하우나 고유함 따위는 잘 모르겠다. 


올 해는 달라지기 위해서 이것저것 다른 시도들을 하고 있다.

다양한 뉴스레터를 구독해서 읽어대고,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고, 철학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전기가오리 추천한다! 자본주의에 물든 나는 자꾸 전자가오리로 읽히지만 어쨌든 전기가오리다.) 물론 실패도 했다. 책 모임을 갖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심지어 몇 번이나 신청도 해봤지만... 사교성 9인 나는 온라인 줌 모임임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까야한다는 부담감에 포기했다. 사실 사교성 9라는 수치가 나오니 어디에도 응용할 수 있다. 회식을 가자고 하면, "사교성 9인 나는 갈 수 없어" 약속을 잡자고 하면, "사교성 9인 나는 할 수 없어"등등... 물론 마음속으로만. 이걸 입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은 벌써 사교성 9가 아니라, 90인 거다. 물론 워크숍 당일 회식에선 써먹었다. 2차 가자는 걸 진짜로 "사교성 9라 집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했던 것이다. 하하.


그리고 글쓰기도 계속할 거다. 이글이든, 저글이든 닥치는 대로 써볼 작정이다. 내가 웹소설 연재해서 치킨값을 벌었다는 얘길 여기도 했던 거 같은데 올해가 가기 전에 다른 글을 쓸 생각이다.(사실 난 선금을 받아서 치킨값만 까인거라 이걸 벌었다는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선금을 다 까고 치킨값을 벌어야 번 건데...출판사 입장에선 마이너스라. 어쨌든.) 지속가능이 되기 위해선 결국 해보는 '시도'밖에 답이 없다. 

그 시도들을 크든 작든 해볼 밖에. 그래서 이글도 작가의 서랍에 처박아 두기 전에 그냥 발행을 누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는 프리 하게 일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