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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Dec 15. 2016

프리랜서는 프리 하게 일하는 것이 아니다.

펑펑 놀아도 하늘에서 돈이 내려준다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코끝에 알싸한 겨울 냄새가 끼쳐온다. 올 겨울 처음으로 내복을 꺼내 입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두꺼운 패딩을 챙겨 입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많이 껴입어서 몸에선 열이 나고 얼굴은 띵띵하게 부어서 누가 양 옆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추위다. 여름엔 땀이 나서 쓰지 못하고 겨울엔 빛을 말하는 큰 맘먹고 산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즐겨 듣는 팟캐스트 '빨간 책방'이다. 


이번 팟캐스트는 '글쓰기의 힘&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이다. 

제목부터 무섭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글은 어떤 글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저 백색 소음처럼 들리던 이야기들 속에서 문득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말들이 나온다. 재능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 쓰는 일에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 우리는 천재라는 수식어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를 외면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흔히 천재라고 생각하면,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 종일 뒹굴뒹굴 놀다가도 '그분'이 와서 단 몇 분 안에 근사한 작업물을 내놓을 것 같지만... 정작 천재라 수식되는 이들은 대부분 일중독자들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인즉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일에 매달려서 노력하는지 우리는 쉽게 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 프리랜서 일은 프리 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의 자유가 주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책임과 얼마나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잊고 있었다. 그저 당장 뒹굴뒹굴거리다가도 몇 시간만 수고하면 하늘에서 돈이 내려올 줄 알았나 보다. 카페에서 근사하게 차 한잔 마시면서 노트북을 보거나 손을 놀리면 어디서 돈이 뚝뚝 떨어져 줄줄 알았던가 보다. 


프리 하게 일하는 것의 수고로움과 처연함을 잊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것의 갑절을 노력해야 하고 더욱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성큼 다가온 회사의 퇴직과  맞물려 얼렁뚱땅 갑작스럽게 사업자를 내고 일하게 되었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프리랜서로의 일이 그렇게 다가와버렸다. 


막상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도 테이블을 앞에 두고 견적 이야기를 할 때는 동상이몽을 꿈꾼다. 저쪽에서 내놓는 금액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보니 이러려고 회사를 나오는가 싶다. (내가 이러려고.. 따뜻한 회사를 나오는가.. 내가 고작 이 돈을 벌려고...ㅠㅠ)


퍼뜩, 정신이 든다.

코끝이 쨍한 겨울이 왔고 나는 회사를 내발로 나오고 갑작스럽게 프리 하게 일하는 절벽 끝에 서게 되었다. 프리 하게 일하기 위해서 나는 프리 해지지 않을 것이다. 천재는 아니더라도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할 것이고 일한 만큼만 돈을 벌 것이다. (라곤 쓰지만 그래도 놀고 싶다. 펑펑 놀아도 하늘에서 돈이 내려줬으면 좋겠다.) 


*그림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안개 위의 방랑자'입니다. 이 방랑자는 절벽 너머의 무엇을 보는 것일까요? 뒷모습은 쓸쓸해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지팡이를 짚고 한 쪽발로 올라선 뒷모습은 힘이 넘칩니다. 방랑자처럼 삶을 여행처럼 절벽 위에 서있지만 절벽 너머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싶다는 의지에서 올립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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