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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Oct 18. 2023

세비야에서 만난 아미고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6

10월 4일 수요일 아침 6시에 잠을 깼다. 잠을 잔 것도 잠을 안 잔 것도 아닌 상태였다. 오늘은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한다. 세비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바르셀로나에 와서 바로 부엘링으로 갈아타고 세비야로 넘어갈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변수가 많았다. 당일날 예매한 시간에 세비야로 갈 비행기를 놓치거나 하면 낭패였다.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다시 공항에 갈 생각을 하니 어제 바로 세비야로 갈 걸 그랬다. 하룻밤만 묵고 공항에 갈 거라 짐은 풀지도 않았다. 내려가니 호텔에서 불러 준 택시가 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었다.


와, 그런데 무슨 놈의 택시가 대형 벤이 왔다. 우린 두 사람이고 짐도 20인치 캐리어 달랑 두 개이건만 택시가 너무 크다. 기사님도 친절하고 덕분에 편하게는 갔지만 요금은 훨씬 더 많이 나왔다. 혹시 호텔에서 택시 부를 때 짐이 없으면 '보통 택시' 등의 정확히 원하는 사이즈를 말해야 한다.

공항에 도착해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내추럴 카페에 들어갔다.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시고 위층에 있는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국내선은 온통 부엘링의 노란색 물결이다. 카운터뿐만 아니라 셀프 체크인 기계까지 죄다 부엘링이다. 블로그 글을 찾아보니 셀프 체크인으로 짐을 부치는 게 너무 쉽다는 말에 셀프 체크인을 한 것까지 좋았는데 수화물 태그 스티커가 나와서 붙이긴 했는데 처음이라 어쩐지 이상하게 붙여서 캐리어에 붙이는 스티커까지 뚝 떨어져 나갔다. 영상을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더라.  


이거 누가 쉽다고 했어! 주위를 둘러봐도 서로 눈치 보면서 하느라 바쁘고 거기 있던 직원 분께 물어보려고 했더니 부엘링 직원이 아닌지 영어를 하나도 못해서 무조건 인포데스크 가라고 해서 낭패였다. 위탁 수화물 분실로 악명이 높은 부엘링이라 이렇게 짐을 보냈다가 못 찾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내가 제대로 붙였는지 확답을 받고 싶었다.


결국 부엘링 카운터로 향했다. 부엘링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수화물 태그 맞게 붙였냐고 물으니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무조건 맨 끝에 있는 464 카운터로 가란다. 아무래도 질문이 들어오는 족족 이쪽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다행히 맨 끝 카운터에는 줄이 거의 없어 바로 할 수가 있었고 카운터에 계신 남자분이 너무 친절했다. 내가 말했듯이 나는 친절한 사람 앞에선 날개를 다는 성향이라 내 안에 숨어 있던 영어가 막 나오더라.


셀프 체크인으로 수화물을 붙이려고 했는데 스티커가 잘 붙여진 건지 잘 모르겠다. 한 번 봐주면 안 되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티켓이랑 다 확인해 줬고 제대로 잘 붙였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곳에서 바로 짐도 붙일 수 있었다. 긴가 민가 할 때는 무조건 카운터에 가서 붙이자. 허허.

드디어 창가에 앉게 되었다고 좋아한 울 엄마


세비야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세비야로 가는 방법 중 비행기가 가성비 대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수화물 분실 걱정 없이 가려면 짐 옵션을 위탁이 아니라 기내용 오버헤드 러기지로 추가해서 가면 된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 무거운 짐을 들고 올리는 게 솔직히 스트레스다. 낑낑거리고 올리거나 내리다 보면 도와주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도 스트레스라 이번 여행에선 위탁 수화물로 보내고 무조건 가방을 좌석 아래 둘 수 있는 짐만 가지고 탔다.


아무리 부엘링이라고 해도 경유해서 오는 것 말고 이렇게 직항으로 오가는 비행기에서 짐이 분실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한다. 실제로 캐리어는 잘 찾았다. 짧은 비행이라 숙소까지는 EA 공항버스를 이용해서 갔다. 처음 타보는 버스라 긴장했는데 버스 안에 전광판에 정류장 정보와 방송 안내가 나온다. 물론 스페인어라 미리 자신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알고 타야 무사히 내릴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바르셀로나와는 정반대의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맞아! 이런 게 바로 유럽이지!" 하지만 곧 세비야의 어마어마한 태양이 우릴 반겼다. 그야말로 '뜨겁다!' 선글라스 없이는 다닐 수 없는 날씨였다. 구글 맵에선 분명히 걸어서 7~8분 거리였는데 좁은 유럽식 골목길을 캐리어를 끌고 가다 보니 땀이 흠뻑 젖었다.


지쳐갈 때쯤 '호텔 잉글라테라'가 눈앞에 나타났다. 호텔은 누에바 광장 바로 앞에 있었다. 누에바 광장 바로 옆에는 트램 정류장도 있어서 다니기도 엄청 편했다. 호텔 입구 짙푸른 차양에 차분한 골드로 'HOTEL INGLATERRA'라고 적혀 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입구에서 짐을 받아 옮겨주고 직원들 모두 친절하고 반갑게 맞이해 줬다.


체크인하는데 멀끔하게 잘생긴 직원이 내 여권을 보더니 'amigo 아미고'라고 했다. 그러더니 한국어로 '친구'라고 정확히 말해준다. 하하. 갑작스러운 말에 뭐라고 대답도 못하고 '아미고, 오케이!'라고 하고 웃어줬다. 그 아미고는 그 후로도 오갈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며 인사해 줘서 덕분에 인사하고 다니는 것에 쑥스러워하는 나도 반갑게 인사하고 다녔다.


원래 업그레이드는 컨시어지 마음인가? 암튼 친구여서 그랬는지(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아니면 내가 워낙 부킹닷컴에서 비싸게 예약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룸도 업그레이드도 해줬다.

덕분에 예약한 룸보다 훨씬 넓고 좋은 곳으로 안내받아 기분이 한껏 들떴다. 호텔 잉글라테라는 오래된 유럽식 호텔이다. 전체적으로 옐로톤과 플라워 계열로 아늑하고 고전적인 분위기다. 나는 이런 오래된 느낌의 호텔을 좋아한다. 이번 여행에서 단연코 가장 좋았던 호텔이다. 강렬한 세비야의 태양을 막기 위해 창문마다 블라인드가 버튼으로 조작가능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좋은 호텔에도 슬리퍼와 물은 없다. 대신 냉장고에는 물을 비롯한 다양한 미니바가 마련되어 있다. 어메니티는 호텔에 있을 딱 그 정도의 어메니티다.


인상 깊은 건 좌변기 옆에 유럽식 비데가 있다. 처음 봤다. 엄마가 웬 미니 세면대가 있다며 신기해해서 기겁을 하고 뛰어가서 그 위에 걸린 수건 쓰면 안 돼!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수동식 비데 위에 작은 수건이 걸려 있는데 그건 수동으로 물로 뒤처리를 한 후 닦는 용도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도 사용 안 하는 비데를 여기서 수동 비데로 처리할 일이 없어서 화장실 갈 때마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만 봤다. 껄껄.

  

엄마가 배고프다고 해서 바로 호텔 옆에 있는 레스토랑 '테라비바 Terraviva'에 갔다. 이곳은 이미 구글 맵 맛집 리스트로 찍어 놓은 곳이었다. 점심시간이라 '메누 델 디아'로 먹었다. 메누 델 디아란 우리나라 말로 하면 오늘의 요리 정도 된다. 매일 메뉴판이 바뀌고 음료, 디저트 포함해서 싸게 먹을 수 있는 코스라 스페인에 간다면 한 번쯤은 꼭 먹어야 한다. 단 점심시간에만 가능하다.(스페인 식사 시간이 우리와는 약간 다르다. 대부분 2시부터 늦게 먹으니 12시에 가면 못 먹을 수도 있다.) 메누 델 디아 메뉴판이 따로 있거나 칠판에 써놓는다. 메누 델 디아가 있는 식당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웬만한 레스토랑에는 다 있다.


우릴 담당해 준 서버 분이 유독 친절하고 상냥해서 메뉴도 추천받아서 골랐다.

식전에 빵과 함께 나오는 올리브. 올리브 좋아하는 나로선 우리나라와 달리 실하고 큰 올리브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안에 씨앗이 들어 있는데 옆에 씨앗을 뱉어놓는 곳도 따로 있더라.

애피타이저 음식으로 시켰던 샐러드와 크로켓. 샐러드는 보통 맛이었고 저 크로켓이 맛이 있었다.

메인은 어쩌다 보니 둘 다 닭... 하나는 구운 것, 하나는 조린 것 정도의 차이랄까. 오른쪽에 양념에 조린 것이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는데 엄마는 왼쪽에 구운 게 낫다고 했다. 구운 닭가슴살은 헬스하고 먹어야 할 만큼의 담백한 뻑뻑한 맛이다.

여기서도 여지없이 마신 띤또 데 베라노. 확실히 보케리아 시장에서 마신 것보다 와인 맛이 강하다.

후식은 아이스크림과 무스 케이크 그리고 라떼 한잔을 시켰다. 접시 위에 무슨 숯을 깔고 놓은 줄 알았다. 이쯤 되니 배가 불러서 다 먹지 못하겠더라. 친절한 서버 분이 남기니 맛이 없냐고 묻길래 배가 불러 남겼다고 하니 환하게 웃어줬다. 나는 역시 친절한 사람한테 약하다.


메누 델 디아는 소식하는 사람한테는 과할 수 있다. 코스 요리로 즐기다 보니 배가 무척 부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먹고도 두 사람이 합쳐서 38유로 정도 나왔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58유로가 나왔으니 그에 비하면 훨씬 싸게 먹었다.


배도 부르겠다 이제 미리 한국에서 예약하고 간 세비야 대성당에 가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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