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7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누에바 광장에 가봤다. 태양이 뜨겁다. 이 작은 공원엔 산 페르난도 3세의 동상이 서있다.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아 에스파냐를 통일한 왕이다. 세비야 시청도 이곳에 있고 공원은 작지만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오가는 곳이다. 해가 떨어지는 오후에는 아이들이 나와 축구를 하거나 가족 단위로 나와 쉬기도 한다. 밤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데 이 얘긴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하.
우리도 몇 번이나 타고 다녔던 트램이 광장 바로 옆에 다닌다. 누에바 광장이 마지막 정류장이라 타거나 내리기 쉽다. 트램 정류장이 몇 개 안 되지만 주요 관광지는 다 다녀서 세비야에선 트램만 타고 다니고 대부분은 걸어서 다녔다.
여기 사람들은 트램이 바로 앞으로 오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지나다녀 놀라웠다. 속도가 느리긴 해도 그 앞에서 축구를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 앞에서 체육복 입은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해서 내가 다 심장이 철렁했다. 누가 축구의 나라 아니랄까 봐...
세비야 대성당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물론 태양이 뜨거워서 그늘만 찾게 된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애매한 거리다. 이곳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지나다녔던 길인데 너무 예쁘다. 세비야 관광지 중심부를 가르는 도로로 가운데 건물에 위풍당당하게 하겐다즈가 입점해 있다.
너무 눈에 띄어서 결국 다음날 한 번 사 먹었다. 원래 아는 맛이 무섭다고 맛은 있었는데 가격은 싸지 않다. 컵 한 개에 6,000원 정도. 하겐다즈가 다 그렇지 뭐.
쭉 걸어가다 보면 늘어선 노천카페에 자리 하나 없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 세비야 관광객들이 여기 다 있구나 싶을 때 갑자기 너무 정교하고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세비야 대성당이 나타났다. 처음으로 유럽의 관광지 다운 곳에 와서 감격스럽다. 나중에 본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는 다른 감동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3번 째로 큰 성당으로 다양한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내부에는 다양한 그림, 장식, 조각 등으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당시 지어진 건축물들이 몇 개 남지 않았는데 이곳 히랄다 탑과 나중에 가본 알카사르가 유명하다.
세비야 대성당 예약은 미리 한국에서 할 수 있다. 히랄다 탑을 포함해서 근처에 있는 살바도르 성당도 껴서 팔기 때문에 꼭 구매하고 가자. 살바도르 성당은 다른 날 봐도 전혀 상관없다.
대성당 앞 승리의 광장에 있던 분수대. 약속 장소나 일일 투어 모임 장소 혹은 쉼터로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앉아서 멍 때리며 사람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나는 유럽 성당에 들어가면 천장의 높이와 장식에 마음을 빼앗긴다. 대성당에 들어간 순간 역시 어마어마한 높이와 장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식된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은 시시각각 달라져서 아침에 와서 보는 것과 오후에 와서 보는 게 전혀 다르다.
나는 오후에 가서 따뜻한 오후 햇살이 가득 비쳐 들어와 너무 아름답다웠다.
100년간 지어진 성당답게 안에는 볼거리가 많다. 소제단부터 주제단까지 각 제단에 있는 온갖 그림과 조각상들은 그때의 믿음과 화려한 시절의 한 때를 떠올리게 했다. 오히려 사그리다파밀리아 성당보다 볼거리 자체는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림, 조각 등 일일이 보고 다니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따로 가이드를 듣거나 미리 알아보고 간 건 아니어서 앞에 놓인 설명글을 열심히 번역해서 엄마한테 얘기해 줬다.
그나마 우리 둘 다 교회를 다녀서 성경 관련한 이야기라든지 예수님을 형상화한 작품은 열심히 봤지만 엄마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그림이요, 조각일 뿐 흥미가 금세 떨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엄마는 시차 적응에도 실패하고 오래 걷지도 못하는 터라 1시간도 안 되어 방전되고 말았다.
중앙 좌우에 성가대석과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위에는 천사들의 조각상이 웅장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맞춰 찬송을 했다면 정말 천상의 소리였을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을까. 파이프 오르간을 보는 것만으로 황홀했다.
가운데 주제단은 철문을 닫아두었다가 일정시간 지나면 열어서 사람을 조금씩 들여보낸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림 같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하나하나 황금을 입힌 목제 조각상들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조각하고 황금을 입힌 것으로 화려하고 섬세해서 입이 떡 벌어진다.
유럽 성당은 단순한 관광으로 가는 것보다 종교가 있다면 확실히 더 의미 있고 볼 게 많은 곳이다.
세비야 대성당이 유명한 건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는 관을 스페인의 왕들이 메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버려졌던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땅을 밟지 않겠다고 한 그의 유언대로 스페인 왕들이 메고 있어 땅에서 들려져 있다고 한다. 혹자는 콜럼버스의 유해는 이곳저곳으로 나뉘어 있다거나 진짜 유해는 이곳에 있지 않다는 얘기도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4명의 스페인 왕들이 관을 메고 있는데 어떤 왕의 발을 만지면 세비야에 다시 오고 어떤 왕의 발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내가 갔을 땐 관광객들이 하도 만져서 그런지 아예 줄을 쳐놓고 만지지 못하게 해 놨더라.
세비야 대성당 내부는 구경할 게 많고 작품들도 많아서 자세히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3시간도 부족할 것 같다. 하지만 엄마 때문에 히랄다 탑도 못 올라가고 눈으로 수박 겉핥기만 한 우리는 1시간 만에 나오게 된다. 하하. 히랄다 탑으로 올라가는 경사가 완만해서 엄마도 올라갈 줄 알았던 내 판단은 오산이었다.
이때부터 어쩐지 이 여행이 내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세비야 대성당 관람을 후딱 마치고 나와 오렌지 정원에서 쉬었다. 엄마가 쉬는 동안 못내 아쉬웠던 난 기념품 숍에 들어가 연필 하나를 사왔다.
오렌지 나무가 심어진 정원은 대성당이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따뜻한 곳이다. 지금은 오렌지를 볼 수 없지만 11월에 오면 노랗게 익은 오렌지 열매들을 볼 수 있다. 여행하면서 느낀 건 스페인 여행은 무조건 11월이다. 특히 세비야에서 10월 초는 아직 한 여름이다.
지친 엄마를 끌고 기어코 메트로폴파라솔까지 왔다. 메트로폴파라솔은 독일 건축가가 만든 목조 건물로 버섯 모양이라고 하는데 관광객들에겐 와플 모양으로 더 알려져 있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생겼다.(응?) 위에 올라가서 보는 해지는 전망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지쳤고 해는 아직 뜨겁고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하나였다.
스페인에 와서 먹는 첫 추로스를 먹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간 추로스 가게는 오는 길에 있었던 '엘 코메르시오' 추로스로 100년이 훌쩍 넘은 곳이었다. 안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밖에 작은 테이블에 서서 먹을 작정으로 포장으로 부탁했는데 거기서 먹는 것도 테이크아웃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가게는 서서 먹는 곳도 많아서 유의해야 한다. 아예 거리에 서서 먹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랑 엄마는 앉을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 떠밀려서 온 곳이 메트로폴파라솔.
겨우 올라와서 자리 잡고 앉아 추로스를 먹었다. 엄마 왈, 이러고 먹고 있으니 스위스 선착장에서 추운데 먹었던 마트에서 산 닭이 생각난다고 했다. 어째서 좋은 기억보다 춥고 배고픈 기억은 오래 남는 걸까? 허허.
메트로폴파라솔에도 가족 단위로 와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가 더 눈에 띄었다. 이건 마치 남산 공원에 와서 명랑 핫도그 먹는 외국인을 보는 기분일까.
이후로 추로스는 딱 한 번 더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너무 적긴 하지만 엘 코메르시오 추로스는 강추다. 정말 꼭 먹어야 할 만큼 맛있었다. 특히 저 초콜릿 맛이 일품이다. 진하고 뜨겁고 맛있다. 추로스도 하나도 달거나 짜지 않고 쫀득쫀득하고 맛있었다. 초콜릿에 찍어 먹으니 너무 맛있다. 하나만 사서 나눠 먹었는데도 양이 많았으니 무턱대고 1인 1 추로스는 하지 말자.
카루푸에서 물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엄마는 완전 녹초가 되어 씻지도 못하고 먼저 자고 나는 영수증과 쓴 돈을 계산하고 내일 가야 할 곳들을 알아보느라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이 패턴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 바람에 엄마는 아침에 텐션이 높고 나는 아침에 죽을 맛이고, 엄마는 오후 3~4시만 지나도 힘겹고 나는 들어오긴 아쉽고... 전혀 여행 패턴이 맞지 않았다.
카루푸에선 생 오렌지를 갈아 병으로 판다. 오렌지 가는 기계가 있는데 안에서 오렌지가 돌아가면서 즙을 짜주면 옆에 있는 다양한 크기의 병에 담아서 계산하면 된다. 맛이 우리나라에서 먹는 오렌지와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에선 오렌지 주스를 마실 일이 거의 없었다. 원래 음료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한국 오렌지 음료는 달콤한 맛보다 시큼한 맛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신맛 좋아하지 않는 나는 먹을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스페인 오렌지 주스는 다르다. 하나도 안 시고 달고 맛있다. 솔직히 여행하면서 일 년에 마실 오렌지 주스를 다 마신 것 같다.
오렌지 함유율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는 환타도 꼭 마셔야 한다고 해서 사 왔는데 정말 맛있다. 탄산까지 섞여 있어 시원하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