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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14. 2023

레몬맛 아이스크림과 땀 세례 받은 플라멩고 공연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10

플라멩고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먹을까 했지만 엄마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쉴 겸 젤라또 가게에 들어갔다. 엄마랑 그 씨름을 하고 났더니 나도 멘털이 나가서 어이없게 레몬맛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우리가 들어갔던 OLMO는 오르차타라는 스페인 음료로도 유명한 곳이라 오르차타를 마실까 하다가 젤라또만 시켰다. 갈증이 나고 뭔가 시원하고 상큼한 맛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켰던 레몬맛 젤라또.


나는 신맛을 가장 싫어한다. 싫어하는 과일도 자두다. 아이스크림은 무조건 초콜릿이 들어가야 할 정도로 꾸덕꾸덕한 맛을 좋아하는데 대체 이날 왜 내가 생전 먹지도 않을 레몬맛을 귀신에 홀린 듯 시켰던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다른 맛이랑 같이 시킨 것도 아니고 저 하나 가득 레몬이다.

한 두 번 먹고 나니 입안 가득 퍼져오는 신맛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중엔 입안이 얼얼해서 아플 정도다. 엄마가 그걸 왜 먹냐고 해서 오기로 반 이상을 먹었다.(꾸엑) 어떤 소비가 되었든 제 정신일 때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교훈을 새기며 플라멩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내가 예약한 공연은 7시 공연으로 공연시간 보다 1시간은 일찍 가서 앞에서 줄 서 있다가 들어갔다. 우리 앞에 중국인 커플이 서 있었고, 우리가 두 번째였다. 나중에 보니 알카사르에서 마주쳤던 한국인 커플도 이곳에 왔더라. 동양인은 그 정도고 대부분 독일 등에서 온 서양인들이 많았다.

공연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중정 안에 작은 무대가 있고 둘러싸고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보다시피 천장이 야외로 천막만 씌워진 상태라 덥다. 한낮의 열기가 식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더웠다. 바로 옆에 바가 있어서 공연 기다리면서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우리가 일찍 갔던 이유는 좋은 좌석을 맡기 위해서인데 공연장이 작아서 어디에서 봐도 잘 보일 것 같았다. 두 번째 입장이어서 어디든 앉을 수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무대 바로 아래 1열에 앉으려다가 엄마의 선택으로 2줄 가운데에 앉았는데 정말 신의 한 수였다. 1열에 앉은 사람들은 여성 댄서의 치맛단 공격과 남성 댄서의 땀세례를 받을 수 있다. (하하)

맨 앞줄에 앉아 땀 세례와 치맛단 공격으로 언짢아하던 독일인 가족들;;;

공연 시작 전 무대에는 오늘 나올 공연자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다. 남성 댄서 1명과 여성 댄서 2명, 기타 1명, 싱어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 안내자가 잠깐 나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고 각 나라 언어로 인사도 해주고, 분위기를 돋운다. 공연에서 주의할 사항도 알려주는데 아쉽게도 사진촬영은 할 수 없었다.


공연은 정시에 시작했고 내가 다른 플라멩고 공연을 본 적이 없으니 비교 대상이 없어 이날의 공연이 최고였는진 모르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최고였다.

남성 가수들이 박수를 치면서 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소리가 간드러지면서 애잔함이 묻어난다. 댄서들은 화려한 플라멩고 의상을 맞춰 입고 우아하게, 때로 강렬하게, 때로 비통하게 춤을 췄는데 온몸의 세포를 짜내서 추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여성에 비해 남성 댄서는 사실 보여줄 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후반에 독무를 출 때의 박력과 열정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가 무너져 내릴 정도로 바닥을 구른 데다 땀이... 엄청 흐른다. 나중에 턴을 돌 때 얼굴에서 엄청나게 땀방울이 튀기는 데 조명에 비친 흩날리는 땀방울마저 안무의 하나같을 정도였다.


단체, 듀엣, 독무 등의 무대로 1시간의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스페인에 갔다면 플라멩고 공연은 꼭 봐야 한다. 플라멩고 박물관의 경우 공연 시간대도 많고 한국에서 예약을 하고 올 수도 있다. 근데 골목마다 작은 공연장들이 워낙 많고 팸플릿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으니 굳이 예약하지 않고 와도 일정에 맞춰 원하는 곳으로 가도 좋다.

공연이 끝나고 저녁 8시가 되었는데도 밖은 여전히 훤하게 밝다.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마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현실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스페인에 와 있는 것도 비현실적이었는데 스페인에서 플라멩고 공연을 본 것도 비현실적이라, 이것은 마치 여행 속의 여행. 그러니까 액자 구성으로...(그만하자)


나는 출출했지만 엄마가 빨리 쉬고 싶어 해서 슈퍼마켓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왔다. 그나마도 엄마는 씻지도 못하고 잠들어서 나 혼자 빵과 주스로 끼니를 때웠다.


다음날, 10월 6일 금요일은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일일투어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예약한 건데 솔직히 기대감이 하나도 없었다. 왜냐면 론다에 가고 싶어서 미리 신청했던 여행사에서 자기들 일정 문제로 어이없게 취소를 해서 투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럴바엔 그냥 엄마랑 둘이 버스타고 갈까하다가 결국 출국하기 얼마 전에 부랴부랴 다른 여행사로 예약을 하고 왔다. 당일 여행 인원이 소수라 버스 대신 차량이 바뀌었다고 들어서 더 반신반의했던 것도 사실이다.  


조식을 먹자마자 나와 호텔 앞에 서있던 택시를 타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젊은 기사가 택시를 거의 날듯이 운전해서(오랜만에 부산에서 곡예 운전하던 기사님 생각이 났더랬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역시 우리가 너무 빨리 왔다. 어딜 가든 무조건 일등으로 가서 기다려야 마음 편한 사람, 나야 나. 그래도 가이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이 차량이 들어와서 유턴해서 빠져나가기 쉬운 곳이라 약속 장소로 삼은 것 같았다.

기다리면서 바라본 붉게 떠오르는 태양은 아름다웠다. 세비야의 하루가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세비야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론다였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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