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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Oct 15. 2024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믿기 힘들지만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욕을 하지 않고 나쁜 습관을 버리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억압된 못된 내가 삐죽하게 튀어나와 '아, 인간이란 변하기 얼마나 어려운 동물인가'라고 절로 한탄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 맘과 같지 않아서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정말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1. 스벅에서 있었던 일

한가했다. 당연하다. 주말에 스벅 가는 걸 별로 하지 않는다. 커피 맛이 하수구 맛이라 그나마 커피 더블샷을 마실 일 아니면 가지 않은지 오래다. 요즘 가는 건 동생이 일 때문에 생긴 쿠폰을 자꾸만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한 직장에서 나온 무리들이 계산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보통은 한 사람이 주문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리를 맡아 앉아있지 않나 싶었지만 한가한 시간에 스벅은 굳이 자리를 맡을 필요가 없어 보이긴 했다. 나는 최대한 그들과 떨어져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한 여자가 주문을 도맡아 하면서 나머지 무리들이 그제야 어슬렁거리며 자리를 찾기 위해 떠났다. 내 상식으로는 보통 계산이 끝나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경우 자연스럽게 옆쪽으로 빠져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들끼리 얘기하느라 그런지 뒤에 서 있는 내가 안 보인건지(이건 솔직히 그럴 수 없다. 내 덩치가 얼마나 큰데...) 암튼 내 앞으로 내 어깨를 거의 스치듯 지나쳐 갔다.


아, 이때 나는 나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약간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좁은 인도에 만난 양쪽에 선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을 알고 있는가. 양쪽 모두 혼자라면 적당히 몸을 살짝 비틀어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일행이 있을 경우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이 경우, 경우의 수는 4가지이다. 서로 비켜서서 한 줄로 만들어 가는 것, 한쪽이 비켜서서 가는 것, 또 다른 한쪽이 비켜서서 가는 것, 양쪽 모두 비켜서지 않고 툭툭 치며 가는 것. 어깨빵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일행이 있든 없든 대부분 비켜서서 간다. 내 쪽에 일행이 있으면 한 줄로 서게 해서 비켜서서 가는데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은 못돼서 늘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든다.


왜 나만 비켜서는가.라는 비교적 근본적인 물음이 생겨난다. 왜 내 반대편 사람들은 비켜서지 않는가. 왜 그들은 번번이 일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좁은 인도를 점령한 채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가. 우리 집이 학교 근처라 하교 시간에 나가기라도 하면 이 어깨빵 현상은 일상이다. 왜냐면 이 질풍노도의 애새끼들은 절대 비켜서는 법이 없다. 심지어 마음먹고 어깨빵을 하고 지나가도 지들끼리 하하 호호하느라 내가 어깨빵을 했다는 인지력도 없다. 어디서 날파리가 와서 부딪힌 것 정도의 느낌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래 내가 이 중2병들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런 애새끼들 사이에서 예전에 정말 절벽 위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 같은 소년을 보았다. 언젠가 글도 썼던 것 같은데 감동받았으니까 또 쓴다.


자기 친구들과 떼 지어 가다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얼굴도 잘생긴 아이가 지 친구들의 뒷덜미를 낚아채 한 줄로 서게 한 다음,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주더라. 와, 난 정말 그런 학생은 처음 봤다. 잘생긴 얼굴에서 후광이 나는 효과가 생겨 있지도 않은 내 딸 사위 삼고 싶더라. 모두 명심하자. 후광 필터는 그런 작은 배려에서 나온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나는 이때 지난 어깨빵 트라우마가 떠올랐고 이 사람들을 위해서 배려해 주고 싶지 않아 뒤로 물러나는 수고를 해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내 얼굴 앞을 바로 지나쳐 가던 남자를 향해 "아니, 예의는 어디서 밥 말아먹었나. 옆으로 빠지지도 않고 코앞으로 가는 매너보소."라고 다소 크게 중얼거렸다.


주문한 메뉴가 나와 스벅에서 나올 때까지 나는 그 직원 무리들과 대치했다. 눈으로 서로 '살'을 날렸는데 아마도 그 직장인들의 오후 뒷담화 메뉴는 '어디서 이상한 아줌마가 튀어나와 지랄하고 자빠져 있네'였을 것이다.


2. 길 위에서 있었던 일

길에서 담배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 길에서 침 뱉는 사람, 길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싫어한다. 이 세 가지 모두 다 한다? 아무리 차은우라고 해도 나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다. 쓰레기 버리기는 사실 쉽다. 한 번이 어렵지, 모두 쉽게 한다. 나는 이미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턱 위에 마시던 음료수 페트병을 놓고 가는 아이, 타고 있던 버스 바닥에 침을 뱉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방 안에 있던 쓰레기를 버리던 아이. 물론 어른들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 많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안내 방송을 했다.


지하 주차장 창고 안에 버리고 간 물건들이 많으니 알아서 찾아가라는 말이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일하는 분들이 밖으로 빼내 모아 놨었다. 몇 년 동안 방치된 오래된 쓰레기가 엄청났다. 이불, 의자, 책상, 서랍장, 가전제품까지 별의별 게 다 있었다. 그렇게 치우고도 대책이 없으니까 찾아가라는 방송까지 나왔다. 제 집에서 나온 쓰레기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버리고 가는 사람들 밑에서 자란 애들이 뭘 배우고 자라겠는가. 빤하지.


며칠 전에 길을 가는데 앞에 걸어가던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자애 둘이 쓰레기를 버렸다. 그냥 버린 것도 아니고 받아 든 전단지를 받자마자 그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서 무슨 폭죽 터뜨리듯 두 손으로 던져서 버렸다. 씨X, 나는 무슨 축제라도 벌어진 줄 알았다.


내가 요즘 상태가 멜랑꼴리 해서 머릿속이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막 말이 튀어나오는데 때는 이미 늦으리다. "아니,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미친 것 아니야? 어디서 쓰레기를 저딴 식으로 버리고 가?"라는 말이 제법 크게 나왔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고 앞에 걸어가던 애새끼들이 움찔 거리는 게 느껴졌다.


"야! 쓰레기를 저렇게 버리고 가면 어떻게 해?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 그럴 거면 받지를 말아야지. 안 치우고 가네? 어?!"라는 말이 역시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막 나왔다. 사실 치울 수도 없었다. 이미 지나왔고 갈기갈기 찢어버린 종이 조각 하나하나를 줍기에 고등학생 애새끼들의 가오도 있을 텐데 나 같은 아줌마 말만 듣고 다시 돌아가서 치우겠는가. 솔직히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유단자나 주먹 쓰는 사람이었으면 뒷덜미 부여잡고 다 치우고 가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했다.


말로 내뱉은 순간, 애새끼들이 뒤돌아와서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윽박지르는 순간이 재현될까봐 살짝 무서워졌다. 그래도 마음의 양심은 있는지 그중에 한 명이 슬쩍 뒤돌아 '죄송합니다'라고 작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걔들은 착한 애들이었을지 모른다.


나 학교 다니던 시절엔 담배를 피워도 몰래 숨어서 피웠는데 요즘 애들은 교복 입고 아예 대놓고 피운다. 등기소 앞에 사람들이 나와서 담배 피우는 담벼락이 있다. 지난번에 보니까 거기에 남자애들이 교복 입고 모여서 담배를 피우길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나가는 말로 '와, 교복 입고 담배를 피우네. 담배 일찍 피우면 키 안 커. 쟤들 키 안 크고 싶나 보다.'라는 미친 헛소리를 지껄이는 바람에 애새끼들의 눈총을 받은 것은 물론, 함께 가던 일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짐을 당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발작 버튼이 눌린다. 나도 모르게 말이 먼저 나와버린다. 나도 안다. 이러다가 다굴 당할 것 같다.(다굴이 뭐니...) 근데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면서 지켜야 할 공중도덕이나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면 화가 너무 많이 난다. 내가 무슨 그리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참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작은 배려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을 보면 쉽게 마음을 내어주고 반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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