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긴- 하루
지난 몇 년 동안 타임슬립에 관한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나왔다. 수많은 변주들로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영화 '하루' 또한 타임슬립에 관한 영화이며 그중에서도 하루의 일정 시간이 똑같이 반복되는 무한루프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다.
하나는 일정한 하루가 반복되는 설정이 똑같은 '사랑의 블랙홀(1993)'이었고 다른 하나는 타임슬립 물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똑같은 시간 속으로 세팅되어 들어가는 '소스코드(2011)'였다. 영화 '하루'는 내게는 이 두 영화의 변주곡처럼 들려지고 읽히고 보였다. 사랑의 블랙홀도 소스코드도 모두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이다. 그렇다면 왜 '하루'는 이 하루가 이다지도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고작 90분밖에 안되건만-
성공한 의사에서 스스로 봉사의 삶으로 내려간 준영(김명민)이 귀국한 날 이상한 일이 생긴다. 딸의 생일 약속을 위해 달려간 길 위에 딸의 죽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준영은 2시간 전으로 돌아가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눈을 뜨게 된다. 어떻게 서든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고 준영은 매일같이 딸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어느 날 사고 난 현장에서 자신의 멱살을 잡으며 따지는 한 남자.
당신 뭐야? 다 똑같은데 왜 당신만 달라?
민철(변요한)은 준영처럼 시간 속에 갇혀 매일같이 준영의 딸처럼 아내가 사고를 당해 죽는 날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사고를 막기 위해 두 사람의 사투가 매일같이 펼쳐지게 된다. 그런 두 사람에게 자신이 범인이라며 나타난 또 다른 한 남자. 바로 사고를 낸 택시기사다. 세 사람 사이에 과연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준영의 딸과 민철의 아내를 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영화 후반부에 그 세 사람의 사연이 펼쳐지고 결말은 그 세 사람의 얽힌 실타래가 풀리고 다시 매듭지어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급격하게 재미가 떨어진다. 말도 안 되는 몇 가지 인과 관계와 이해가 안 되는 지점도 있었다. 자꾸만 내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본다. 아- 이 지겨운 하루는 언제쯤 끝나는 걸까?
영화 '하루'는 중의적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루의 특정한 시간도 이야기하지만 영화 속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강식(윤재명)의 아들 이름이기도 했다. 결말에 준영의 딸이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내 안에 하루가 있어요.'라는 장면에선 솔직히 내가 그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온 하루 아빠였다면 준영의 딸을 다시 죽이고 싶었을 것 같다. 영화는 지옥처럼 시작했다가 갑자기 용서로 구원받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깔게 없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두 사람 모두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다른 의미로 튀었다. 한 사람은 너무 건조하고 (김명민) 한 사람은 너무 과잉이다. (변요한)
연기 본좌라는 별명이 있는 김명민은 성실하고 좋은 배우다. 코믹 연기부터 진지한 연기까지- 물론 나는 그의 코믹한 연기를 조금 더 좋아한다. 조선 명탐정 시리즈를 특히나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김명민의 연기는 건조하고 버석거린다. 어쩐지 딸아이의 죽음을 목도한 아버지로서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변요한은 아마도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배우들 중에서 한 명이 아닐까? 연이어 본 그의 영화에서의 모습은 감정 과잉이었다. 거칠게 화를 내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나 아내('하루')를 지키려고 오열하고 애를 쓴다. 너무 애를 써서 안쓰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두 영화 모두 일종의 타임슬립에 관한 영화였다. 미생에서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다시 기대하는 건 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