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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25. 2017

18.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영화는 박열의 '개새끼'라는 시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가 읊조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장면에 맞춰 일본에서 가마꾼으로 일하는 박열(이제훈)의 모습이 보인다.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려다 발길질에 나뒹구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그의 시, '개새끼'같다. 


일본 어묵집에서 일하는 가네코 후미코는 그의 시에 매료되고 이미 일본에서 아나키스트로서 '불령사'라는 단체의 우두머리였던 박열과 동거하게 된다. 그와 그녀의 동거 서약이 인상 깊었는데,

첫째,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후반으로 갈수록 가네코 후미코라는 일본 여성에 대해 궁금함이 일었다. 저 당시에 저런 서약서를 쓰면서까지 아나키스트로서 항일투쟁에 나서는 일본인이라니? 

가네코 후미코가 옥중 생활중 써 내려갔던 옥중수기는 그녀의 자서전으로 현재 출판되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충북 청원군에 있는 친척집에 들어가 학대를 받으며 7년을 지냈다. 3.1 운동 등을 목격하면서 이에 동감하고 1919년에 다시 일본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때 사회주의자들을 만나면서 영향을 받고 아나키스트로서 박열과 함께 '불령사'를 조직하게 된다. 


일본인으로 박열과 함께 붙잡혔을 때 일본인들은 박열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신념은 확고했다. 심문 조서에서 박열과 동지로 하나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박열에게 부화뇌동하여 천황이나 황태자를 타도하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천황은 필요 없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박열과 같았기 때문에 부부가 됐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조건 가운데는 그런 생각을 공동으로 실행하려는 동지적 결합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다른 형무소로 헤어지게 된다. 동지로서 같은 길을 걷던 두 사람은 한 사람은 22년 2개월의 형을 살고 출소하게 되고 한 사람은 형무소에 간지 얼마 안 되어 타살이 의심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가네코 후미코는 옥에서 박열과 혼인신고를 하고 헤어져 얼마 안 되어 감옥에서 죽었다. 영화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그리고 있지 않고 타살이 의심되는 의문사로 그리고 있다. 


물론 박열 역시 그 후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다. 21살에 들어간 감옥에서 40대가 되어 나온 후에도 신조선 건설 동맹에 이어 재일본 조선인 거류민단의 초대 단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4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하게 된다. 한국 전쟁으로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고 북한에서의 삶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974년에 박열은 평양에서 죽음을 맞는다. 


박열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물론, 고향 문경에는 박열의사 기념관이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아마도 아나키스트로 일본 천황은 물론 남북한 정권을 모두 거부한 그의 자유로운 사상 때문에 그의 업적이 생각보다 덜 알려진 것이 아닐까?


나 역시도 포스터가 주는 강렬한 힘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보고 싶진 않았을 것 같다. 

이제훈은 이제훈인데 처음 보는 야수 같은 이제훈의 얼굴 위로 강렬한 빨간색 붓터치로 '박열'이라는 글자가 크게 써져 있고 옆에는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이 포스터.


어느 누구나 궁금하게 만드는 포스터이고 예고편이었다. 박열은 실제로도 그만큼 강렬하고 꺼릴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일제 치하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불량하고 통쾌한 조선인이지 않았을까? 감옥에서 가네코와 사진을 찍고 재판장에 한복을 입고 나가고 자신을 심문하는 재판관에게 오히려 수고했다고 하는 박열. 거기에서 오는 통쾌함은 웃음으로 승화된다.



실제로 영화 보면서 몇 번이나 터졌던 장면이 있었다. 영화 '동주'와는 색감도 온도도 모두 다 다른 영화다. 실제 인물을 이토록이나 전혀 다른 온도와 이야기로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도 좋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여기에 나오는 일본인들은 모두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주고 이제훈은 역시 좋았다. 실제 박열과의 싱크로율도 괜찮다. 물론 이제훈이 너무 잘생겨서 탈이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나도 새하얀 그의 치아. 가네코 후미코를 맡은 최희서는 새로운 얼굴이어서 그랬는지 정말 가네코 후미코 같았다. 일본어도 수준급. 후반부에는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가 더 눈에 들어왔다. 박열 못지않은 커다란 비중으로 각인되는 것은 아마도 배우의 힘이겠지.

영화 속에서는 권력자와의 대결, 혹은 정치사상에 대한 대결을 그리고 있지. 사람과 사람은 부딪히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좋은 일본인들도 있고 나쁜 일본인들도 있다는 것이다. 불령사에는 일본인들도 함께 가담했고 가네코 후미코도 일본인이었지만 누구보다 천황을 타도하는데 앞장섰다. 


그 당시 가장 뜨겁게 권력을 부정하고 투쟁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내는 그런 뜨거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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