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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l 17. 2017

19. 택시운전사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함께 보러 갔던 이는 영화 중반부에 이르면서 내내 눈물을 훔쳐댔다. 영화가 끝나고 옆을 보니 얼굴이 벌겋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많이 쉬었다. 어찌나 한숨이 많이 나오던지... 그 한숨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80년 5월에 저런 일들이 우리나라 광주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나오는 한숨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일들이었는데 화면으로 보자니 답답해졌다.


함께 보러 간 이는 목포 출신이었고 학창 시절부터 학교에서 보던 영상들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했다. 서울 출신인 나는 학교 다닐 때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한 영상을 본 기억이 없다. 좁은 땅덩어리 아래에서 어디 출신이냐에 따라 배우는 과정들도 남달랐을 거라 생각하니 한숨이 더 났다.


폭동으로 몰려서 군부독재정부 아래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영화로 나왔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제대로 개봉할 수 있었을까? 세월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변한 것이 별로 없는 세월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광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에게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동상이몽으로 광주를 찾는다. 서울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딸아이를 홀로 키우며 택시비 하나에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이다. 최루탄을 맞아가며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이해 못한다. 배가 불렀다는 것. 그에겐 데모하는 것보다 돈을 벌어 딸아이 새 운동화를 사주고 밀린 월세를 갚는 것이 더 급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광주까지 10만 원에 가자는 외국 사람이 나타난다. 이게 웬 횡재인가!

독일 기자 피터는 일본의 외신기자 생활이 따분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진다는 이야기에 기자로서의 사명과 호기심이 인다. 당장 한국으로 떠나 광주로 가기로 한다. 광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광주까지 태워 줄 기사를 분명히 섭외했건만 영어도 못하고 자꾸 서울로 가자며 돈을 내놓으란다. 이 사람 누구지?


영화가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안에서 밖으로 가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시선이다. 광주와 상관없는 서울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향하고 상상도 못 할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 피터의 손에 들려있는 카메라는 뿌연 최루탄 가스 속에서 나뒹구는 광주 사람들 속에서 돌아간다. 처음에는 무섭고 위험한 이곳을 그저 돈만 받아 하루빨리 뜨고 싶었던 만섭은 결국 손님을 두고 가지 못한다. 먹고살기 바빠 자기밖에 몰랐던 만섭은 광주의 가슴 아픈 일들을 목도한 후 바뀌게 된다. 빨갱이라며 무고한 시민들을 걷어차고 총으로 쏴대는 이 무시무시한 일들 앞에서 피터와 그의 카메라를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단단히 마음먹고 가서인지 생각보다 잔인하고 마음 아픈 장면들은 덜 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현실은 훨씬 더 잔인하고 가혹했다는 걸. 역사가 없는 민족은 없다. 그 역사가 길건 짧건 역사 속에서 발전되고 진화한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송강호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능청스러운 초반 연기에서 광주의 현실을 목격하는 가슴 아픈 눈빛에 이르기까지. 광주 택시운전사 역할의 유해진이나 대학가요제 나간다며 해맑게 웃던 류준열이나 모두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낸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토마스 크레취만이 독일 기자 피터 역을 맡았다. 이분 젊은 시절에 엄청난 분위기 미남이었는데 여전히 깊은 눈빛으로 광주를 취재하는 기자역을 잘 해주었다. 또, 경계초소를 지키는 군인 역할로 카메오 출연한 엄태구도 반가웠다. 

영화 엔딩엔 독일 기자 피터의 실제 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생전 인터뷰가 나온다. 김사복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며 울컥거리는 그의 인터뷰를 보며 든 생각은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과연 누구였을까? 정말 영화에서처럼 그 이름은 가명이었을까? 찾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80년 5월의 광주는 불과 4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무고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 짧은 세월에도 우리는 참 많이 변해왔다.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차별은 있을지언정 우리는 광화문에 모여서 함께 촛불을 들었고 정권을 교체했다. 늘 최악이라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늘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 밤을 맴돌다가 피어나는 꽃처럼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갔던 그들때문에.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 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 혜은이 '제3한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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