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北海道) 여행 13
-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삿포로행 기차는 1시 26분에 아바시리에서 출발한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역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아바시리 역 대합실은 아주 오래전 할머니 집에 가기 위해 기다리던 기차역 대합실을 떠올리게 했다. 작고 아담한 대합실에는 도시락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모두들 무료하게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는 모습도 똑같았다. 어쩐지 익숙한 풍경과 향기에 취해 꾸벅꾸벅 졸았다. 여행이 끝나가니 비로소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어깨와 표정이 펴지는 것 같다. 여행이 아쉬운 건 언제나 항상 편안해졌을 때쯤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삿포로에는 저녁 7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창밖으로 석양이 물드는 것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아바시리에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아마 힘들겠지? 이 모든 풍경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아쉽다.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은 역시 역에서 가까운 '게이오 플라자 호텔'이다. 하룻밤에 11,340엔이다. 거리상으로는 너무 가까워서 택시 타고 이동하기도 미안할 정도다. 내일 아침 공항으로 갈 때는 걸어야겠다. 체크인하고 캐리어 무게 체크를 해봤다.
야속하게도 16킬로가 넘어간다. 제주항공은 무료 수화물 무게가 15킬로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갈 때 1킬로 초과될 때마다 1000엔 정도의 금액을 문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수화물 초과되어 물게 되는 금액이 왜 이리 아까운지 결국 짐을 다시 싸면서 거의 입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스웨터를 버렸다. 짐을 최대한 줄이고 맞춰서 기어코 15킬로 이하로 맞췄다. 저가항공의 비밀이다. 절대로 그냥 싼 게 아니기 때문.
게이오 플라자의 느낌은 첫날밤 묵었던 그랜드 호텔과는 또 달랐다. 직원들도 더 많았고 다들 웃고 있었지만 마치 웃고 있는 가면을 쓴 느낌이랄까. 그 느낌이 가장 강렬했던 것은 한쪽에 서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따라오며 캐리어를 끌어주던 벨보이였다. 아예 입술을 억지로 올려놓은 듯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너무 웃고 있는 얼굴이어서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닌 사람이었다. 괜찮다는 내 제스처를 눈치 못 챘는지 결국 내 방까지 캐리어를 끌어와줬고 TV 보는 방법이나 알지 않아도 될 정보들을 간단한 영어로 알려주었다. 이쯤 되면 팁을 쥐어주고 내보내야 했지만 나는 줄 돈이 없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여행 시 호텔에서 팁을 준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벨보이가 있어 방까지 운반해준 경우도 거의 없다. 언제나 나 혼자 짐을 내리거나 올렸는데 이 호텔은 벨보이가 있어서 컨시어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마지막 밤인 데다가 돈이 많이 남지도 않았고 내가 쓸 돈을 빼면 잔돈도 얼마 없어서 안타깝게도 팁을 줄 돈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로비에서 확실히 괜찮다고 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다.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그는 어정쩡하게 예의 그 웃음을 짓다가 물러갔다. 알면서도 모른척해야 하는 나도 민망한 상황이다. 그러길래, 거참. 괜찮다고 했건만. 내 짐은 내가 들 수 있었다고!
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씻으면 더 나오기 싫어질까 봐 서둘러 길을 나섰다. 마지막 밤은 꼭 수프 카레를 먹어야 했다. 지난번에 갔던 사무라이를 다시 갈 생각이다. 두 번째 방문에도 역시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사람은 많지 않아서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대기자 명단을 다른 사람이 받고 있어서 오늘은 그때의 페도라 쓴 타블로가 비번인가 했더니 주방 쪽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22. 내 영혼의 수프 카레' 참고) 자신만의 스타일인지 오늘도 페도라를 썼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스타일 하나씩은 있으면 좋겠다. 모자랄지, 시계랄지, 향기랄지.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런 스타일이 있을까. 없다면 뭐가 좋을까.
오늘도 역시 1층 1인석에 앉아서 똑같은 메뉴에 밥양과 수프만 다른 것으로 주문했다. 역시 삿포로 클래식도 한 잔. 지난번에도 옆에 일본 남자가 혼자 와서 앉았는데 오늘도 일본 남자가 혼자 와서 앉았다. 지난번엔 자유분방한 예술가 타입이더니 오늘은 IT 회사에서 일하는지 노트북을 끼고 앉아 수프 카레에 코를 박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 열심히 먹는다.
계산을 타블로(닮은)가 받고 있어서 마지막이니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여행 중에 두 번째로 왔는데 맛있게 잘 먹고 가요! 다시 올게요.'라는 덕담을 남기고 싶었으나 쿨하게 가기로 한다. 이건 나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 바쁜 와중에 타블로 (닮은)가 문 앞까지 나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줬다. 다른 손님에겐 그렇게까지 인사를 하지 않은 걸 알고 있는데 내가 다시 온 줄 알고 해주는 인사였다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 흐뭇해졌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혹시 다시 올 때까지 그곳에서 페도라 쓰고 일해달라고 하면 덕담일까? 악담일까? 덕담이길...
돈키호테에 다시 들렸다가 역까지 가서 백화점도 둘러봤다. 쇼핑하기 싫어하는 나도 이곳에 와서는 좋든 싫든 백화점은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한국에서도 가지 않는 백화점을 여기 와서 마음껏 구경하고 다닌 셈이다. 역시 제일 좋은 곳은 식품 코너다. 유명하다는 디저트 코너에서 컵 푸딩을 샀다. 늦은 저녁이라 C컵은 다 나가고 F컵만 남았다. 난 처음에 C컵, F컵 하길래 솔직히 여성 속옷 사이즈 생각했다. (쿨럭, 쿨럭;;) 참 일본스럽게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했었지. 알고 보니 치즈의 C, 프룻의 F란다. 허헛. 북해도산 우유로 만드는 C컵은 하루에 만드는 양이 정해져 있고 맛있어서 항상 먼저 빠지니 먹어볼 사람은 조금 일찍 가야 한다.
밖에서 한참을 들고 다니다 숙소에 오니 엉망으로 쏟아져 있다. 푸딩은 될 수 있으면 사서 바로 먹는 게 좋을 듯하다. 모양은 흉해졌지만 먹어보니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안에 산딸기와 젤리까지 있어서 부드럽고 달고 맛있다.
짐을 정리하고 씻고 나니 잠이 안 온다. 내일이면 다시 한국에 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짧은 꿈을 꾼 것도 같고 당시에는 힘들었던 일들도 금세 희미해져 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빌딩 건물의 한 층이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있다. 시간을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삿포로 회사들도 야근과 철야를 하는구나. 이 시간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건물 안의 사람들.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행하는 내내 했는데 이들에겐 그저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다. 문득 얼마 전 일본의 유명한 광고 회사에서 과도한 업무에 자살한 신입 직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회사는 밤 몇 시 이후에는 무조건 소등시키고 퇴근시킨다고 들었는데 그 시간이 밤 9시인가, 10였던 것 같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법정 근로시간 아니었던가? 혹자는 불을 끄고 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막힌 이야기도 내놨지만 어쨌든 그건 비단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모품처럼 느껴지는 직장인들이 어디 한둘이랴. 나 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다. 무시무시한 현실의 갭에서 오는 괴리와 우울감과 피로감이 겹쳐져 방전되고 나자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욜로족이니 하는 신종어가 생겨나고 인생 한 번뿐인데 어떠랴, 내 멋대로 내 식대로 즐기면서 살자가 모토가 되어 가고 있다. 욜로족이라는 말이 생긴 것 자체가 그 사회가 보여주는 불안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엇을 선택해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건 결국 사회의 시스템 문제다.
생각이 많아지니 잠은 더욱 오지 않는다. 한국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회사를 덜컥 그만둬 버렸으니 어째야 하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어지고 살을 붙여 나갔다.
결국 나는 그 날밤 새벽 세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