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北海道) 여행 14
-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잠을 설치고 일어났다. 늦게 잠든 데다가 오늘은 따로 일정을 생각하지 않은 터라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공항에 가기 전에 홋카이도 대학을 산책하고 나카토노 호텔에 가서 이카메시를 가져올 예정이다. 나카토노 호텔에서 언제든 가지러 오라고 메일 답장을 주었다.
어제 사 왔다가 남긴 에클레어를 먹었다. 짐을 싸 두고 역으로 향한다. 오늘 아침은 역에 있는 도토루에서 먹을 생각이다. 일본 여행에서 아침 식사는 도토루에서 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한 번도 가지 못하고 지나쳐 다니기만 했다. 마지막 날 아침 일부러 찾아가 먹었다. 토스트와 따뜻한 커피 한 잔. 딱 원하는 맛이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만 여유가 있는 느낌은 묘하다. 마치 한국에서 평일날 커피숍에서 죽치고 앉아 영화나 책을 보는 기분이다. 천천히 걸어서 홋카이도 대학에 갔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의 클라크 박사는 보고 싶었는데 가는 길에 마음이 바뀌었다. 얼핏 들여다본 대학 교정은 그야말로 눈 밭이었다. 대학 교정 산책은 여름이 좋을 것 같다. 겨울에는 눈과 빙판으로 쌓여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하나도 아쉽지 않다.
삿포로 시내의 빙판길을 걷기 위해 균형을 잡는다. 온 신경이 발끝에 있다. 어느 곳에는 녹아 있고 어느 곳에는 산처럼 쌓여 빙판으로 굳어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넘어질지 모른다. 관광객들은 무장한 채 균형을 잡느라 조심하는데 현지인들은 하이힐이나 구두를 신고도 잘 다닌다. 물론 빙판길에 넘어진 일본인도 서너 명 보았다. 담배를 피우며 급하게 걷다가 된통 넘어진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머리를 쓸어 넘기고 갈길을 갔다. 넘어져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 굳이 애써서 온 몸에 힘을 주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말 것.
나카토노 호텔에 가니 여전히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며 비닐봉지에 이카메시를 담아 주셨다. 이카메시를 들고 게이오 플라자 호텔로 향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끌고 역으로 걸어갔다. 산치토세 공항으로 가는 기차는 10분 간격으로 계속 있다. 시간에 맞는 기차를 타고 넘어가면 된다. 30분 정도 소요된다.
여행은 끝이 났다. 떠나는 날이 되니 날씨가 좋아졌다. 햇빛은 쨍하게 내려쬐고 하늘은 맑고 상쾌한 겨울 공기가 가득한 날이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좋았다. 이제 겨울에 왔으니 여름에 다시 오면 좋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한 여름이라 더욱 홋카이도 생각이 많이 난다.
한국에 돌아와 간간히 일을 했고 일을 뚫기가 어려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는 요즘이다. 하루하루 버티고 산다. 용돈이라도 벌어볼까 시작한 포토샵과 일러스트 수업. 금요일마다 일산 커피숍에서 진행되는 수업 말고는 무료하지만 바쁘게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여행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얼마 전 영화 '문라이트'를 봤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시 한 편을 읽는 기분이었다. 너무 울어서 눈물이 될 것 같다는 흑인 아이는 달빛 아래에서 성장한다. 나를 만져준 것은 오로지 너밖에 없었어라고 케빈 앞에서 고백할 때는 펑펑 울었다. 달빛 아래서 흑인 아이들은 푸르게 빛난다. 블루에서 블랙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는 것은 자신이어야 한다. 어쩌면 내 삶은, 모두의 삶은 자신의 이름을 짓는 길고 긴 시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조금은 방황해도 조금은 둘러서 와도 괜찮다. 나는 나다워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다운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안녕, 홋카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