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는 넓고 세계의 구석구석은 제각기 다른 느낌과 냄새를 풍긴다. 꽤 여러 곳을 여행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반짝이며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둘러보려고 했고, 학업을 위해서 머물렀던 곳도 있고,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여행한 적도,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회사 업무를 하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해외에 살고 있으니 이것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인도에서 혼자 지방 버스를 타고 도시 간 이동을 하고, 정차할 때마다 짜이 티를 사 먹는 기차 여행, 캠핑카를 타고 아이슬란드 여행, 호주 반 바퀴를 도는 히치하이킹, 치기 어린 유럽여행, 출장과 겸한 이탈리아, 미국 여행, 리조트 올인클루시브로 지냈던 몰디브, 자전거로 일주한 제주도, 페리를 타고 매 주말마다 갔던 홍콩, 부모님을 모시고 갔던 교토 아라시마야 온센 리조트...
언젠가 여행이 주는 설렘이 조금은 시들해졌다. 가볼만큼 가봤다는 것인지 뭐 더 새로울 게 있겠냐 라는 의심인지 새로워봤자 더 좋을 리 없으니, 이미 가본 곳을 다시 가봐야겠다는 마음인지 여행 일정을 짜는 데서 오는 귀찮은 마음인지 혹은 그 모든 감정이 섞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Anthony Bourdain의 Parts Unknown 시리즈를 보았다. 그가 여행하며 보여준 것들은 신선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을 만나고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과 섞여서 관광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줬다. 그중에 한 에피소드는 자메이카에 간 것이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현지인들이 해변에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고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실은 그 해변이 자메이카에서 유일하게 현지인에게 허용된 해변이라는 것이다. 그 외의 모든 다른 해변은 리조트나 호텔이 가지고 있어서, 현지인들은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조트가 잘 되어있는 여행지에 private beach 가 있다면, 좋은 리조트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 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다른 문화 다른 삶의 방식을 보려고 여행을 하는 거라면, 거대한 리조트와 호텔에 묵으면서 현지인의 삶과는 멀리 떨어진 체험을 한다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을 느끼려는 목적은 아마 사라질 것이다. 물론 리조트 안에서 최대의 편의를 누리면서 지내고 싶다면 그 목적은 달성이 되겠지만, 그렇다면 세계 곳곳을 여행할 필요는 없어질 것 같다. 그저 가격대비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는 호텔이나 리조트를 꼽아보면 그게 어디에 있든 다름이 없어질 것 같다.
관광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는 세계 어디서든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이 가진 생활이나 터전을 해치면서 까지 관광 개발을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나 혹은 관광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 것 같다. 특색 없는 거대한 리조트가 세계 곳곳에 위치한다면, 그중 어떤 한 곳에 가야 하는 이유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메이카 에피소드는 여행의 설렘이 그리운 나에게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