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을 만들고 싶은 평론가
중구 구립도서관에서 진행된 인문학 특강. 도서관에서 만든 주제는 ‘I AM’. 부제는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이다. 신형철 작가는 사실 평론가로 더 유명하다. 평론으로 데뷔하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외모는 수수했고, 신문, 방송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았다. 유명한 고전 게임인 원숭이섬의 비밀의 ‘가이브러쉬 쓰립우드’, 월리를 찾아라의 ‘월리’를 닮았다. 두 인물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고, 당연하겠지만 처음 만난 그에게 호감이 느껴졌다.
그의 최근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그의 담백한 비평, 강력한 공감대 형성, 감탄을 했었고, 그런 그가 이번에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들고 도서관 대강당에 들어왔다.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와 관계를 모르고, 김연수 소설가를 모르고 순수 무지의 상태(?)로 우연히 그의 책 <대성당>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단편에 과도하게 몰입되어 그날 바로 앓아누웠다. 그는 현실주의 소설로 성공했고, 인정받았던 미국 작가였다. 이어서 읽은 그의 다른 단편집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그의 시집 <우리 모두>는 참 어려웠다.
그런 그의 <대성당>과 그 단편집에 함께 있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들고 강연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아쉽게도 강의가 끝나고.. 늦깎이 부모가 되어 수족구에 걸린 자녀를 돌보러 가야 해서 책에 사인을 해주는 시간을 만들기 어렵다는 양해의 말로 강연은 찬란하고도 가족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한줄 요약 : 문학에 대한 생각에 너무 공감했다. 난 이제 그의 팬..
아래는 너무나 공감했던 그의 강의 요약.
최근 들어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문학 작품의 매출은 현저히 감소하고 있으며, 대학 내에서도 문학 학과들이 제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문제들과 동시에(?), 머지않아 대학의 문학과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기적 공간'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통해 이기적 공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아이를 잃은 엄마가 빵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에서는 공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의 도입부를 거꾸로 읽어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릴지도 모른다.
또한,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의 소설 <대성당>은 부부가 아이를 잃은 후 대화의 주제와 이해의 깊이가 달라지는 과정을 다룬 내용이다. 대성당이라는 시설에서 시각장애인이 아내의 옛 친구가 집에 찾아오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대성당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보면, 맹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신 사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연민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민의 가치를 양면적 관점에서 필요로 했으며,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함양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는 동시대를 살면서 연민과 공감을 연구하며 학문적 우정을 나누었다.
또한 우리 세월호 사건은 특별한 사건으로, 우리 모두가 어떤 참상을 겪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공감과 이해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된다. 가족에게 공감을 표현할 때는 위로를 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인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도덕적 판단의 기준 또한 나의 불편함과 관련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떨어지며, 사회는 더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에는 공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Sympathy와 Empathy라는 개념을 통해 공감의 양면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은 인지적 공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공감 능력은 인지적 노력에 의해 향상될 수 있다.
사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해와 언론 자유의 중요성 역시 이러한 공감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유권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문학의 자유와 창작의 책임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전보다 문학의 자유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창작자에게 더 큰 책임을 부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학은 여전히 사회적 공감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공부의 세 가지 종류.
1) 나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공부
2)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공부
3) 나로부터 타인을 지키기 위한 공부
‘나의 무지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라’